난민은 골칫덩어리?…"시리아 아이들이 독일 마을 살렸다"
NYT "獨 마을, 난민 16명 받아들여 학교 살리고 활력 되찾아"
(서울=연합뉴스) 김병수 기자 = 유럽 국가들이 몰려드는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독일의 한 시골 마을이 새로 정착한 시리아 난민 덕분에 활력을 되찾는 등 되살아났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난민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고 난민들과 화합한 결과라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타임스에 따르면 구동독에 속했고, 주민이 820명인 독일의 작은 마을 골조우(Golzow)는 지난 2015년 16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였다.
마을 주민 수 대비 새로 정착한 난민의 비율은 지난 2015년 독일의 전체 인구(약 8천200만명) 대비 수용 난민 수(약 150만명) 비율과 엇비슷했다.
골조우는 최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유권자 4명 가운데 1명이 난민 반대를 내세우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투표했을 정도로 극우 정당이 인기를 끄는 지역이었다. 또 많은 주민이 서독 출신이 아닌 자신을 '2등 시민'이라고 여기는 외딴 마을이었다.
프랑크 쉬츠 시장은 이런 배경에 비춰볼 때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마을 주민 3분의 1이 떠난 구동독의 이 외딴 마을의 영혼이자 중심인 학교를 살리는 유일한 길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당시 마을엔 더는 학교에 입학할 어린이가 없어 폐교 위기가 시작된 상황이었다.
쉬츠 시장의 결정으로 10명의 시리아 출신 아이가 부모와 함께 이 마을에 도착했고 학교는 폐교 위기에서 벗어났다.
쉬츠 시장은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시리아인들이 우리 학교를 살렸다"고 말했다.
또 이를 계기로 골조우는 다시 활력을 찾으며 살아났다.
시리아 난민들이 도착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골조우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했다는데 대부분의 주민이 동의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빈 아파트엔 사람들이 채워졌고, 매년 열리는 해바라기 축제 때는 아랍식 페이스트리와 독일식 사과 타르트가 판매대에 나란히 놓인다.
학교 관리인이 낙엽 청소를 위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시리아 어린이의 아버지들이 맨 먼저 자원봉사자로 나선다.
손주가 먼 거리에 있는 한 마을 주민은 시리아 어린이 3명에게 낚시하는 법과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등 보호하고 있고, 아이들은 그를 '오파'(독일어로 할아버지라는 의미)라고 부른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하지만 쉬츠 시장이 주민들에게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구상을 처음 설명할 때 주민들은 회의적이었다.
당시 11살 아들의 학급에 갑자기 3명의 시리아 어린이가 배치된 한 주민은 "'그들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이건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 애들은 더는 제대로 된 독일어도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주민들도 시리아 난민들이 소란을 피우고 물건을 훔치는 등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쉬츠 시장은 회상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이후 독일에선 난민들이 관련된 범죄가 잇따라 난민 반대 여론이 확산했다.
골조우에 정착하려던 시리아 난민들도 회의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올해 32세로 세 아이의 엄마인 할리마 타하 씨는 친구들이 "동독이라고? 미쳤니? 그들은 외국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만류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노력했고, 4년이 지난 지금 마을 주민이나 시리아 난민들은 지금의 모습에 대해 그들도 놀라워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타하 씨는 새로 정착할 집에 처음 갔을 때 쉬츠 시장이 꽃과 장난감을 들고 왔고, 마을 주민들은 새집을 꾸미도록 접시와 같은 가재도구를 주었다고 회상했다.
또 등교 첫날엔 독일 아이 부모들이 마침 라마단(이슬람교 금식 성월) 기간이라는 것을 모르고 케이크를 갖고 와서 시리아 가족들을 맞아 한순간 어색해하기도 했으나 함께 웃고 케이크도 잘랐다고 소개했다.
현재 시리아 난민 출신 어른 6명은 모두 일자리를 구했고, 이들은 급속하게 고령화하는 독일에서 빈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시리아 난민들이 화합하는 전환점은 시리아인들이 도착한 뒤 몇 달이 지난 2015년 10월 마을 주민들의 시위가 결정적이었다.
지역 정치인이 수십명의 젊은 남자 난민을 학교 체육관에 수용하기 위해 주민 설득에 나서자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를 지켜보던 시리아 난민 출신 타하 씨도 나서서 학교나 유치원 옆에 젊은 남자 난민 수용시설을 마련하는 데 대한 문제점과 이 마을에 난민을 더이상 수용하기 어려운 점 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자 이를 계기로 지역 주민들은 난민들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버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을 주민들과 난민들이 편견을 넘어 화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이 통일 이전에 동독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3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동독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하루 밤사이에 일과 사회적 지위, 나라를 잃은 신세가 됐다.
그 결과 골조우 주민과 시리아 난민들 모두 자신의 땅에서 쫓겨났다고 느끼는 등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주민들은 아이였던 2차 대전 말에 폴란드 내 독일 보호령으로 도망쳤고 전직 시장도 그들 중의 한 명이었다.
쉬츠 시장은 "마을에 정착한 시리아 아이들은 마을의 노인들과 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그들은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를 알고 있어 해바라기 축제 때 폭죽 터지는 소리에 움찔한다"고 전하며 동병상련을 강조했다.
타하 씨는 "마을이 한 가족 같다. 그리고 우리도 그 가족의 일부"라면서 앞으로 독일 시민권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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