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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민 88일 투쟁, 정부 양보 끌어내…'제2의 우산혁명'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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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민 88일 투쟁, 정부 양보 끌어내…'제2의 우산혁명' 결실
실패했던 '우산혁명' 79일 기록 넘어서…1천명 넘게 체포돼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 이어 두 번째 '승리' 평가
반중국 정서 노골화·홍콩 젊은이들의 좌절 등 큰 숙제로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4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하면서 홍콩 시민들의 지난했던 투쟁이 결실을 보게 됐다.
4일 로이터통신,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오후 입법회 의원,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등 친중파 진영과 회동한 자리에서 송환법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날 오후 6시 미리 녹화된 TV 연설을 통해 시위대의 첫 번째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 송환법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지난 주말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로 159명이 체포됐던 것을 생각하면 사태의 급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초부터 이달 2일까지 홍콩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의 수는 무려 1천183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송환법 공식 철회를 끌어낸 주역은 다름 아닌 88일의 지난한 투쟁을 벌여온 홍콩 시민들이다.
지난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벌인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홍콩 시민은 이에 굴하지 않고 우산 혁명 때보다 더 긴 88일의 투쟁을 이어갔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지난 6월 9일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의 홍콩 시민이 모여 "송환법 철폐"를 외친 빅토리아 공원 집회를 시발점으로 본다.
이는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뒤 일어난 최대 규모 시위였다.
일주일 후인 16일에는 홍콩 정부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데 분노해 주최 측 추산으로 무려 200만 명이 모인 시위가 벌어졌다.
예상 밖으로 거센 민심의 분노에 놀란 캐리 람 장관은 6월 15일 송환법 추진을 "보류한다"고 밝힌 데 이어 7월 9일 송환법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시위대는 송환법이 사망했다고 하면서도 법안의 공식적인 철회는 거부하는 캐리 람 행정장관의 태도에 진정성이 부족하다면서 5대 요구 조건을 내걸고 정부의 수용을 촉구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대부분의 시위대는 평화로운 집회나 행진을 벌였지만, 지난 7월부터는 공식 집회가 끝난 후 일부 시위대가 남아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빚는 일이 반복되면서 시위가 점차 폭력적인 양상으로 바뀌었다.



지난 7월 2일에는 일부 시위대가 홍콩 의회인 입법회 청사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했고, 14일 사틴 지역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로 시위 참여자, 경찰, 현장 취재 기자 등 28명이 다쳤다.
7월 21일에는 일부 시위대가 중앙정부 홍콩 주재 연락사무실 앞까지 가서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고 날계란을 던지는 등 강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바다에 버리거나 불에 태우는 일도 수차례 벌어졌다.
지난달 12일부터 이틀 동안은 시위 참여 여성이 경찰의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에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하자 시위대가 홍콩국제공항을 점거했고, 이에 1천 편에 가까운 여객기가 결항하는 '항공대란'이 벌어졌다.
극심한 충돌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달 18일 170만 명이 참여한 송환법 반대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는 등 평화시위 기조가 정착하는 듯싶었지만, 불과 열흘 만에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충돌은 재연됐다.
이달 2일부터는 총파업(罷工), 동맹휴학(罷課), 철시(罷市) 등 '3파(罷) 투쟁'이 전개돼 홍콩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노동계마저 송환법 반대 투쟁에 동참했다. 동맹휴학에 참가한 학생들만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충돌이 격화하고 시위의 반중국 성격이 갈수록 짙어지자 중국 중앙정부는 무력개입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홍콩과 이웃한 선전(深천<土+川>)에서는 인민해방군 산하 무장경찰이 대규모 시위 진압 훈련을 하는 모습이 수차례 목격됐고, 중국 관영 매체는 '폭력 시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거듭 주문했다.
홍콩 정부가 행정장관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사실상의 계엄령인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를 적용하려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고, 홍콩 정국은 극심한 갈등과 충돌 속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날 캐리 람 행정장관의 송환법 공식 철회 선언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를 둘러싼 갈등은 상당폭 완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 시민들로서는 지난 2013년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 이어 두 번째의 승리를 맛보게 된 셈이다.
지난 2003년 퉁치화(董建華) 당시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 헌법인 기본법 23조에 근거해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같은 해 7월 1일 50만 명의 홍콩 시민이 도심으로 쏟아져나온 반대 시위는 이를 좌절시켰다.
퉁 전 장관은 같은 해 7월 7일 성명을 내고 국가보안법 심의를 연기한다고 밝혔으며, 두 달 후인 9월 5일에는 국가보안법 초안 자체를 철회했다.
이번 범죄인 인도 법안도 당시와 같은 전철을 밟으면서 철회돼, 지난 2014년 '우산 혁명'의 실패 이후 실의에 빠졌던 홍콩 시민들은 이제 '제2의 우산 혁명'의 승리로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작지 않은 희망을 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시위 사태로 노골적인 반중국 정서와 함께 일국양제(1국가 2체제)의 불안정성이 드러났다는 점은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특구 정부에 장기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한, 홍콩 시위사태 격화의 배경에 중국 본토 출신 젊은이들과 일자리 경쟁을 하며 집값 폭등과 경제상황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좌절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무거운 숙제로 던져졌다.
"그만두고 싶다" 홍콩 행정장관 녹취 공개…파문 일자 진화 / 연합뉴스 (Yonhapnews)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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