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균은 어떻게 위(胃)의 강산성 환경에서 살아남을까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흔히 헬리코박터로 줄여서 부르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는 몇 개의 섬모를 가진 나선형 세균이다.
이 섬모를 움직여 비교적 빠르게 이동하는 이 병원균은 위점막에 서식하며 위염·위궤양·위십이장 궤양·위선암·위림프종 등의 유발 원인으로 작용한다.
헬리코박터가 TlpD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표백제(Bleach) 성분인 하이포염소산(HOCI)을 감지한 뒤 그 방향으로 이동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헬리코박터 외에 셀모넬라균과 대장균도 HOCI를 감지하는 데 각각 다른 단백질을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오리건대의 카렌 기유맹 생물학 교수팀은 최근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저널 'PLOS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발표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온라인에 공개된 연구 개요(링크 [https://www.eurekalert.org/pub_releases/2019-08/uoo-nrr082919.php])에 따르면 헬리코박터가 현대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세계적으로 두 명당 한 명꼴이 감염자일 만큼 지대하다. 개발도상국에는 주민의 거의 100%가 감염자인 지역도 있다.
헬리코박터는 위액을 분비하는 위선(胃腺·stomach glands)을 피난처로 삼아 위 안의 험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다른 세균처럼 헬리코박터가 특정 단백질을 이용해 HOCI를 감지하는 걸 '화학주성(chemotaxis)'이라 하는데, 이는 위 안에 서식하는 세균이 어떤 화합물을 마주쳤을 때 섬모 운동을 이용해 다가가거나 또는 멀리 달아나는 데 필요하다.
보고서의 제1 저자인 아든 퍼킨스 박사후과정 연구원은 "헬리코박터가 (숙주에) 감염해 질병을 일으키는 데 이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라면서 "TlpD가 헬리코박터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아내면, 그 기능을 교란하는 약물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HOCI가 존재할 때 헬리코박터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밝히는 것부터 실험했다. 혈액의 백혈구가 생성하는 HOCI는, 면역체계가 세균과 맞서 싸우는 데 핵심적 요소다.
연구팀은 헬리코박터에 분자 신호를 주는 두 종의 다른 단백질과 함께 TlpD를 분리해 과산화수소, 초과산화물, 하이포염소산 등에 테스트했다. 그 결과 하이포염소산에 노출됐을 때 유인 신호를 방출하는 건 TlpD로 확인됐다.
감염이 진행되는 동안 생성되는 하이포염소산은 보통, 박테리아 살균에 효과적이다. 그러나 헬리코박터는 감염 조직에 서식처를 만들어 이 산성의 표백 성분을 견디며 수십 년을 살아남는다.
연구팀은 이와 관련해 백혈구가 생성하는 표백 성분의 화합물을 박테리아는 유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백혈구로 가득 차 있지만 중요한 병원소(crucial reservoirs)가 될 수도 있는 위선(胃腺)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퍼킨스 연구원은 "고농도 하이포염소산이 넘쳐날 수 있는 환경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방어 수단을 진화시킨 게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궁극적으로, 유해 박테리아의 환경 감지 기능을 교란하는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박테리아의 항생제 내성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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