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삼성전자 첨단기술 연구 '첨병' 印 벵갈루루 연구소
4천여명이 통신·IoT 등 연구…삼성전자 최대 해외연구소로 30%가 명문 IIT 출신
(벵갈루루[인도]=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지난 21일 인도 남부 삼성전자 벵갈루루 연구소 본관 4층.
평소 직원 휴게실로 쓰이던 곳에 10여개의 신규 개발 프로젝트 및 아이디어 시연 공간이 마련됐다.
시연 주제는 삼성전자의 인공지능(AI) 플랫폼인 빅스비부터 로봇 관련 성능까지 다양했다.
50여명의 연구원은 빅스비의 음성 인식 기능 효율화, 가정용 로봇 성능 보강 등 출시를 위해 개발하거나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인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설명을 듣는 이들은 이 연구소의 다른 직원들이었다. 일종의 연구과제 '쇼케이스' 행사인 셈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매달 한 번씩 이런 행사가 열린다.
연구소 내 7개 팀이 돌아가며 개발 과제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다른 직원으로부터 피드백을 얻는다.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행사 참여 팀은 영화 캐릭터 등으로 홍보물을 꾸미기도 한다. 이날 발표 팀은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주인공과 이미지 등을 활용해 시선을 끌었다.
각 팀의 연구원 수는 400∼500명 수준이다. 12층짜리 이 건물에는 3천여명이 근무한다.
건물 인근에는 반도체 부문 연구원 1천여명이 일하는 별관도 있다.
삼성전자 벵갈루루 연구소에만 4천여명이 일하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해외 R&D 센터 중 최대 규모다.
이 연구소는 삼성전자가 인도에 진출한 이듬해인 1996년 2월 연락사무소 형태로 시작됐다. 2005년 법인화를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전 세계 곳곳에 35개의 연구소를 운영한다. 이 연구소들은 각각 강점을 가진 부분을 개발해 나간다.
벵갈루루 연구소는 빅스비, 통신 프로토콜, 카메라 이미지 프로세싱, 사물인터넷(IoT) 분야에 강점이 있다. 현지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술도 개발한다.
실제로 최근 출시작 갤럭시노트10에 처음 탑재된 증강현실(AR) 관련 동영상 기능, 동영상 촬영 때 피사체의 배경을 흐리게 하는 기능 등의 핵심 부분이 이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과거에는 동영상 화면을 가리지 않도록 투명 키보드를 활용해 채팅하는 기능, 최대 50%까지 데이터 사용을 줄여주는 기능, 삼성 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를 현지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한 기능 등이 이 연구소 덕분에 상용화됐다.
이곳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20대 후반이다. 영국식 학제를 따라 대학이 3년제이고 모병제가 채택된 나라라 남녀 불문하고 사회진출 연령이 낮기 때문이다.
'IIT에 떨어지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인도공과대학(IIT) 출신이 전체 직원의 30%나 된다.
신입 연구원은 2∼3년 정도 근무한 뒤 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5∼7년 차 이상 연구원은 대개 이보다 더 오래 몸담는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의 다른 연구소를 가기 위한 '중간 단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전자 연구소에서 경력을 쌓은 뒤 세계 첨단 기술을 이끄는 굴지의 연구소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이곳 연구원의 말이다. 연구원에겐 급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첨단 프로젝트 연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인가가 더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여러 IT 연구소를 통틀어도 5세대 이동통신(5G) 같은 차세대 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 연구소 등 몇 곳에 불과하다.
연구원들은 다른 이들이 해보지 않은 희귀 프로젝트를 소화하면서 자신의 몸값과 경력을 끌어올린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두 번째 직장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가간팔 싱(26)은 "삼성전자 벵갈루루 연구소는 최신 기술 프로젝트를 연구할 수 있는 인도 내 몇 안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이 연구소는 최근 인도 내 공학도에게 매우 인기가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연구원 대부분은 소속 팀의 프로젝트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한다.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복장도 자유롭다. 매달 적정 근무시간만 채우면 된다.
근무환경도 좋은 편이다.
각자 조용하게 자신의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가 필요하면 건물 곳곳에 배치된 휴게 공간에서 머리를 식힌다.
건물 4층부터 12층까지 각 층에는 테마별 휴게 공간이 꽤 넓게 꾸며졌다. 드럼, 건반 등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무대 공간도 있다.
연구원 아브히지트 나르군드(32)는 "2011년부터 삼성전자에 근무했다"며 "이곳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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