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독립의 '산파' 손봉숙 17년 만에 재방문
독립투표 20주년 행사 참석…"정말 정말 잘 살길"
"한국, 한발 앞서간 독립국으로서 작은 나라 돕길"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해 새내기 민주공화국으로 태어나는 과정의 '산증인'이자 '산파'로 꼽히는 손봉숙(75)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이 17년 만에 동티모르를 재방문한다.
손 이사장은 12일 연합뉴스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오는 30일 동티모르 수도 딜리에서 열리는 '독립투표 20주년 기념식'에 한국을 대표해 참석한다고 밝혔다.
동티모르는 452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후 1975년 독립했지만, 열흘 만에 인도네시아가 강제 점령했다.
이후 1999년 8월 유엔 관리하에 주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가결했고,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거쳐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손 이사장은 주민투표 당시 유엔이 임명한 세 명의 선거관리 위원 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중앙선관위원인 손 이사장은 1999년 5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선거 관련 학술대회에 참가했다가 그의 '용감한' 발표에 감명받은 유엔 선거국 관리 추천으로 동티모르에 가게 됐다.
손 이사장은 "처음에는 팩스를 받고 어리둥절했다. 아시아 사람이고 여성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며 "동티모르 치안이 위험했지만, 특히 여성 인권이 유린당하는 것을 알고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외교부도 모르게 유엔 선관위원으로 임명됐기에 혼자 싱가포르, 발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딜리에 도착했다.
시외버스 정류장 같았던 딜리공항과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간간이 들리던 총소리를 손 이사장은 지금도 기억한다.
손 이사장은 매일 헬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권자등록 등 선거 준비가 공정하게 되고 있는지 감독하고 애로를 들었다.
그는 "선관위원이라서 중립을 지켜야 하기에 차마 밖으로 표현은 못 했지만, 동티모르가 독립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열망에 가득 찼었다"고 말했다.
동티모르의 독립은 투표율 98.6%에 78.5%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손 이사장은 "동티모르인들의 독립 의지는 엄청났다. 투표율이 100%에 육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며 "투표 결과지에 서명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회상했다.
손 이사장은 2001년 유엔 선거국이 동티모르 제헌 국회의원 선관위원을 맡아달라고 제안하자 다시 동티모르에서 4개월을 보냈다.
손 이사장은 독립투표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선관위원장을 맡아 88명의 동티모르 제헌 국회의원에게 일일이 서명한 당선증을 수여했다.
그리고서 2002년 5월 20일 동티모르민주공화국 선포식에 대한민국 특사단으로 참여해 독립국의 '탄생 순간'을 만끽했다.
손 이사장은 "한 편의 휴먼드라마를 본 것과 같다.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열망에 많이 울고 웃었다"며 "일제에 압박받고 독립운동하고 나라를 건설한 그 모든 과정이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빈손으로는 다시 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미루다 보니 17년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손 이사장.
그는 "독립된 나라에 사는 동티모르 사람들이 지금 행복한지가 궁금하다"며 "정말 정말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다.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 이사장은 "동티모르 청년들이 한국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한국인들이) 악질 고용주가 되지 말고 잘 살 수 있게 도와줬으면 한다"며 "한발 앞서간 독립국으로서 작은 나라를 돕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동티모르 독립투표 선관위원 시절 매일 남편인 안청시 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묶어 2002년 펴낸 책 '동티모르의 탄생'이 영어로 번역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손 이사장은 "직접 현장을 누비며 기록한 동티모르 건국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동티모르 내부에도 이만한 자료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출판해 모은 3천 달러를 초대 대통령인 사나나 구스마오의 아내가 운영하는 여성운동 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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