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닫고 입다문 北…南 쌀지원 거부의사에 선원 송환도 묵묵부답
'한국인 승선 러 어선 나포' 9차례 연락에도 北 무반응…북러는 협의 진행 중
쌀지원 실무협의선 한미훈련 이유로 '거부' 의사…'先북미-後남북' 기조 유지 의도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정성조 기자 = 북한이 남측의 대북식량지원 계획에 대해 돌연 부정적 입장을 보인 데 이어 북측에 체류 중인 한국인 선원들의 송환 문제와 관련해서도 무반응으로 일관하면서 남북관계에 드리운 먹구름이 더 짙어지고 있다.
24일 통일부에 따르면 한국인 선원 2명이 승선한 러시아 국적 어선인 '샹 하이린(Xiang Hai Lin) 8호'가 지난 17일께 기관고장으로 표류 중 북측 수역에서 단속에 걸려 일주일째 북측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통일부는 상황을 처음 인지한 날인 18일 저녁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해당 사안에 대한 회신을 북측에 정식으로 요청한 것을 시작으로 24일 오후 현재까지 총 9차례 북측에 회신·송환 요청을 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북·러 간에는 이번 사안에 대한 협의가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보도자료를 게시하고 "러시아 대사관은 북한당국 및 선사 측과 지속해서 접촉 중이며, 대사관은 가능한 빨리 상황이 해결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도 외교 채널을 통해 러시아에 공조 요청을 해 한국인 2명의 신변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파악했으며, 협의 진행 상황을 공유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박의 국적이 러시아인 만큼 북러 당국 간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긴 하지만, '상시 소통 채널'이라는 남북연락사무소의 취지가 무색하리만큼 정부의 수 차례 연락에 아직 북측에서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는 것은 경색된 남북관계의 현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이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남측의 대북식량계획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는 소식 역시 이날 함께 전해지면서 이런 분석에 무게가 더욱 실리고 있다.
북한은 최근 WFP 평양사무소와 남측의 쌀 수송을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미연합훈련을 문제 삼으며 '수령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런 기류가 북한의 '내부적 입장'이라고 선을 그으며 "최종적으로 공식입장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실무단계의 내부 의견이라 할지라도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상부의 지시 없이 실무급에서 관련 얘기를 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결국 이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 침체 국면이 이어지는 남북관계의 연장선으로, 북한이 '선(先) 북미관계, 후(後) 남북관계' 프레임을 보다 명확히 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미 간 실무협상 재개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섣불리 남측의 쌀 지원을 받는 모양새가 북한 입장에서도 나름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 어선 협의 문제와 대북식량지원 계획에 대한 북측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상당히 분위기가 경직되어있는 거 같긴 하다"며 "그런 상황에서 여러 부정적 현상이 생길 수 있는 거 같은데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미가 힘겨루기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잠수함을 공개하는 등 미국의 양보를 압박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에 남북관계를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쌀 지원 등도 다시 논의되고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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