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식민지배와 학살 딛고 성장…곳곳에 한국 손길
전국에 공장 한 개…최빈국임에도 물가는 동남아 2∼3배
포르투갈어·영어·테툼어·인니어 섞여 '치명적 문제'
(딜리=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1991년 11월 12일 동티모르 수도 딜리의 산타크루즈 공동묘지에서 민간인 107명이 인도네시아군에 사살당했다.
독립 활동을 하다 죽임을 당한 동티모르 청년 세바스티아오 고메스의 장례식에 모인 추모객들을 학살한 것이다.
동티모르 '11월 12일 위원회' 세르지오 사무국장은 24일 산타크루즈 묘지에서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나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그는 "인도네시아군이 사방에서 발포해 아수라장이 됐다"며 "달아나다 보니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이 있길래 끌어안았는데, 나중에 보니 사진이 찍혀있더라"고 말했다.
사진 속 장면은 '동티모르 산타크루즈 학살'의 상징으로 전파돼 현재 딜리 바닷가에 동상으로 남아있다.
동티모르는 450여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 후 1975년 독립했지만, 열흘 만에 인도네시아가 강제 점령했다.
인도네시아가 점령한 24년 동안 학살당하거나 실종된 동티모르인은 최대 20만명으로 당시 동티모르 인구의 4분의 1가량으로 알려졌다.
다만, 동티모르 진실화해과거사위원회 휴고 위원장은 "인도네시아로 끌려가거나 산속에 남은 사람이 많아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다"며 "9만명 정도는 기아로 죽고, 2만5천명 정도가 실제 살해당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외국 기자들이 산타크루즈 학살을 촬영한 영상이 영국에 방영된 뒤에서야 국제사회는 동티모르 참상을 알게 됐고, 그 결과 1999년 8월 유엔 감독하에 주민투표를 거쳐 독립하게 됐다.
20년이 지난 현재 강원도 크기의 동티모르에는 130만명이 살고 있으며, 인구의 91%가 가톨릭이다.
동티모르 국내총생산(GDP)은 25억8천만 달러(3조407억원)지만, 호주가 동티모르 사이 바다에서 석유를 채굴해 나눠주는 수입을 제외하면 8천만 달러(943억원)에 불과하다.
동티모르에 공장이라고는 작년에 생긴 하이네켄 맥주 공장 하나밖에 없고, 커피 수출 이외에는 별다른 소득원이 없어 지금도 호주·미국·일본의 원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농축산업과 어업도 자본·기술이 없어 자급자족하는 수준이어서 실제 구매력을 가진 사람은 3천∼4천명밖에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이웃 인도네시아에서 물자를 수입해오는 사람이 소수이고, 이들이 독점 공급을 하면서 물가가 동남아 다른 나라의 2∼3배 수준에 이른다.
동티모르의 경제 수준이 한국의 1950년대에 머물러 있는 데는 복잡한 언어에 따른 교육 문제가 치명적 요소로 꼽힌다.
동티모르 지도자들은 포르투갈어, 관료는 영어, 사업가는 인도네시아어, 국민은 테툼어를 쓴다. 교과서는 포르투갈어로 배포되는데, 교사들이 테툼어밖에 모른다.
급한 대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수학과 과학 교과서를 테툼어로 만들어 학교에 보급했다.
실상 동티모르의 교육·보건·인프라·문화 분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손길이 안 미친 부분이 없다.
코이카는 동티모르에 국립병원 현대화, 우편 서비스 기반 조성, 인쇄센터 설립과 인쇄기술자 양성, 결핵 관리, 기술고등학교 지원, 한국어·IT·기술 교육 등에 힘썼다.
또, 딜리의 유엔빌리지에 있는 유엔개발계획(UNDP), WHO(세계보건기구), WFP(유엔세계식량계획) 등에도 한국이 꾸준히 자금과 인력을 투입했다.
한국은 유엔기구와 함께 동티모르의 식수·전력·주택 기반사업부터 선거 관리·부패방지, 기생충 등 열대성 질환 박멸 사업, 영양실조 퇴치에 이르기까지 동티모르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진 패트릭 WFP 동티모르 부소장은 "동티모르 사람들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섬인데도 일부 마을에서는 생선 섭취를 금기시한다"며 "제대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한국 직원들과 함께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17년째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을 맡은 김신환 감독도 동티모르가 박수를 보내는 한국인이다.
김 감독은 동티모르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친 지 2년 만에 세계대회 우승을 거머쥐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며, 이 달에도 선수들을 한국으로 데려가 훈련 중이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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