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란, 호르무즈 '유조선 충돌'…핵합의 초대형 '악재'(종합)
이란 英유조선 억류에 유럽 핵합의 서명국 일제히 압박
이란 "국제법 어긴 영국 유조선 법대로 처리" 거부
(파리·베를린·테헤란=연합뉴스) 김용래 이광빈 강훈상 특파원 = 이란의 영국 유조선 억류를 둘러싸고 유럽과 이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놓고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전선'이 유럽으로까지 넓어지는 모양새다.
유럽 측은 19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억류한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 호와 관련, 즉시 석방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란은 이 유조선이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끄고 정해진 해로를 이용하지 않은 데다 이란 어선을 충돌하고서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절차에 따라 처분하겠다면서 유럽 측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당사국인 영국은 20일 주영 이란 대사대리를 불러 자국 유조선의 억류를 엄중히 항의하고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은 19일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 상황이 신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명확한 입장이다"라면서 "군사적 옵션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외교적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헌트 장관은 20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강하게 항의했다.
영국 정부는 19일 밤 내각의 긴급 안보관계장관 회의인 '코브라'(COBRA)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정황을 볼 때 이란의 이번 영국 유조선 억류가 4일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시리아로 원유를 판매한다며 이란 유조선을 나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만큼 양국 유조선의 '맞교환'이 이뤄질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프랑스 외무부는 20일 낸 성명에서 "이란에 즉각 선박과 선원들을 석방하고 걸프 해역에서의 항해의 자유 원칙을 지켜달라고 요구한다"면서 "이란의 이런 행동은 걸프 지역에서 필요한 긴장 완화를 가로막는다"고 강조했다.
독일 외무부도 "우리는 이란에 즉각 선박들을 풀어 주라고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20일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영국 선적의 유조선을 나포한 것과 관련, 긴장을 심화하는 위험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EU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도 20일 낸 성명에서 "이미 호르무즈해협에서 긴장이 높은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긴장이 더 고조하고 사태 해결을 방해한다"라고 지적했다.
서방의 압박에도 이란은 정해진 법적 절차대로 일을 처리하겠다고 일축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20일 트위터에 "페르시아만(걸프 해역)에서 이란의 행동을 국제적 해양 법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의 안보를 지키는 곳은 이란이며 영국은 더는 미국의 경제 테러리즘(제재)의 장신구가 되지 말아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란은 영국이 미국의 사주를 받아 지브롤터 해협에서 이란 유조선을 억류했다고 주장한다.
유럽과 이란의 '유조선 충돌'은 위기에 처한 핵합의의 존폐에도 초대형 악재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한 뒤 핵합의에 서명한 유럽(영·프·독)과 EU는 1년여간 핵합의를 유지하는 방안을 이란과 협의했다.
그러나 이란은 유럽 측이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핵합의 이행에 미온적이라면서 5월8일부터 60일 단위로 핵합의 이행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핵합의 존속을 위해 양측이 적극적으로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유조선 억류로 오히려 긴장이 고조하면서 핵합의의 생존이 더 불안해졌다.
이란은 9월5일까지 유럽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재개하지 않으면 핵합의 이행을 더 축소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조처에는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까지 높이는 방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또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 상선의 안전한 항행을 보호하겠다면서 유럽 주요국이 해군 전력을 배치하면 이란과 군사적 충돌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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