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구조했다던 외국유조선 '석유 밀수' 혐의 억류(종합2보)
UAE 근거지 둔 해상 급유 소형유조선 리아호로 밝혀져
이란, 16일엔 "조난 신호 받고 구조" 발표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혁명수비대는 14일(현지시간) 이란산 석유 연료를 해상 환적 수법으로 밀수하던 외국 유조선 1척과 선원 12명을 법원의 명령에 따라 억류했다고 18일 발표했다.
혁명수비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유조선은 해상에서 이란의 소형 선박 여러 척이 운반한 석유 연료 100L를 받아 이를 먼 곳에 정박한 다른 외국 배로 옮기려던 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억류 지점은 호르무즈 해협의 라르크 섬 남쪽 해상이다.
4일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이란 유조선을 대시리아 제재를 위반했다며 억류한 지 열흘 뒤 이란의 외국 유조선 억류가 맞물리면서 원유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한층 첨예해질 전망이다.
혁명수비대가 18일 밤 공개한 동영상에 따르면 이 유조선은 이란이 조난 신호를 받고 구조했다던 파나마 선적의 리아호로 밝혀졌다.
이 유조선은 14일 새벽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가 꺼진 채 이란 영해로 이동했다.
유조선 항로 추적업체 탱커트레커스는 16일 "리아호는 지난 1년간 두 해안(UAE 두바이와 푸자이라)을 오가며 다른 유조선에 해상에서 급유하는 역할을 했다. 14일 속도가 늦어지다 이란 영해에 처음으로 진입했고 AIS가 꺼졌다"라고 분석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푸자이라를 오가려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하고 라르크 섬도 이 항로와 가깝다.
이 업체는 리아호의 선주가 싱가포르 또는 UAE 회사로 보인다고 추정했으나 UAE 국영 WAM통신은 16일 "리아호는 UAE 회사 소유가 아니다. 리아호가 조난 신호를 송신하지 않았다"라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미국 AP통신은 16일 "이란이 리아호를 나포한 것으로 미국이 강하게 의심하는 상황이 됐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란 외무부는 같은 날 "국제 규범에 따라 조난 신호를 받은 이란군이 리아호를 견인해 수리하려고 이란 영해로 옮겼다"라고 반박했다.
혁명수비대는 "제1 작전해역(호르무즈 해협)에서 밀수를 단속하려고 순찰하던 우리 군함이 석유를 밀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배를 급습했고 법원의 체포 영장을 받아 억류 조처했다"라면서 구조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발표와 동영상을 종합하면 조난한 리아호를 구조하고 보니 밀수하려던 석유가 실린 것을 적발했다기보다 처음부터 관련 정보에 따라 추적해 해상에서 억류했을 가능성이 크다.
동영상에서 혁명수비대는 리아호 갑판에 올라가 밀수의 증거를 확보하려는 듯 탱크 뚜껑을 열어 이곳에 담긴 석유를 확인한다.
리아호 선주의 국적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이 배가 UAE를 근거로 운항한다는 점에서 이번 억류는 이란이 UAE를 비롯한 자신과 적대적인 미국·사우디아라비아 진영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4일 이란 유조선이 영국에 억류된 이후 미국과 영국 정부는 걸프 해역에서 이란이 서방의 유조선을 보복성으로 나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란 지도부도 지브롤터 당국의 억류를 '해적질'이라고 규정하면서 이에 상응한 조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17일 이 사건을 지목하면서 "그런 범죄 행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혁명수비대는 최고지도자의 '지시'가 떨어진 이튿날 외국 유조선을 억류했다고 발표한 셈이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걸프 해역에서 상선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 석유제품을 거래하는 관련국의 미국 주재 대사를 모아 19일 해양안보 계획을 설명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들 국가와 함께 이란의 나포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를 2주 안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중동산 원유를 주로 수입하는 지역이 아시아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 일본 등도 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미 국무부는 18일 낸 성명에서 "호르무즈 해협과 부근에서 선박의 안전한 항행을 계속 방해하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행태를 강하게 규탄한다"라며 "불법 행위를 중단하고 선원과 배를 즉각 석방하라"라고 비판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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