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힘 뺀 성악가 엘사 드레이지 "자연스러움이 최고 무기죠"
한국서 아시아 무대 데뷔…19∼20일 경기필하모닉과 협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태생이 음악을 할 운명이었다. 어머니는 덴마크 오페라 가수였고, 아버지는 프랑스 오페라 가수였다.
도밍고 콩쿠르로 알려진 '오페랄리아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게 2016년인데, 3년 사이 그는 무섭게 성장했다.
베를린국립오페라에서 '슈만과 파우스트 정경', '헨젤과 그레텔', '라 트라바아타' 주역을 꿰찼고, 파리국립오페라에서 '쟌니 스키키'의 로레타를 연기했다. 그야말로 짱짱한 존재감이다.
엘사 드레이지(Elsa Dreisig·28). 세계적인 소프라노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그를 17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인터뷰했다.
◇ 한국서 아시아 무대 데뷔하는 젊은 음악가
"한국에 온 건 처음이에요. 마에스트로 마시모 자네티가 '넌 매우 특별한 걸 보게 될 거야'라고 하셨는데, 영감을 얻어갈 생각에 몹시 기대됩니다."
드레이지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공연이 처음이다. 오는 19일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20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친다. 경기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가 연주를 이끈다.
드레이지는 마시모 자네티에 대해 "자신을 아끼지 않고 150% 헌신하는 지휘자"라며 "한국 관객의 기대에 부응해 꼭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드레이지는 한국 문화를 잘 알지는 못한다고 했지만, 대답 곳곳에 한국 문화를 예습한 노력이 묻어났다. 박찬욱 감독 영화 '아가씨'를 인상 깊게 봤다고 한다.
"한국에는 큰 나무가 정말 많네요. 고층 빌딩과 작은 집, 사찰, 숲이 섞인 풍경이 이국적으로 보여요. 또 한국분들은 정말 친절해요. 프랑스 파리에서 오래 공부했는데, 파리 사람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거든요.(웃음)"
◇ "클래식은 닫힌 세계…자연스러움 추구해요"
드레이지는 성악계 떠오르는 별이지만, 어깨에 힘은 들어가지 않았다. 클래식이 엘리트주의에 빠져 동시대인들에게 배척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가진 듯했다. 그는 우스꽝스럽게 과장된 발성과 자연스러운 발성을 동시에 들려준 뒤, 자신은 후자를 택해 더 많은 이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계는 상당히 닫힌(closed) 세상이에요. 모든 대중이 이 세계를 이해하기는 어렵죠. 저는 성악가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고 외적인 부분도 신경 써요. '디바'처럼 입지 않고 단순한 복장을 하고(실제로 이날도 편안한 점프수트 차림이었다), 평범한 말투를 쓰죠.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음악을 이용해 자신을 중요한 사람처럼 만드는 사람인데요, 자아도취에 빠져 정작 관객에게 음악이 들리지 않아요. 성악가, 지휘자, 연주자가 중심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인터뷰 내내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아름다움을 억지로 추구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저는 어린이합창단을 하면서 무대 경험은 많았어요. 하지만 어린이 목소리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넘어가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죠. 제 목의 구조가 지닌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썼어요. 마치 조각가나 화가가 재료를 고르는 것처럼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수줍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는 제가 가수가 되리란 걸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인지,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에게 '제가 누구게요?'라고 묻기도 하고, 이야기를 전한다는 느낌으로 노래해요. 성악가 중에는 목소리가 아름다운 분도, 연기를 잘하는 분도 있겠죠. 제 장점은 무대에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지금의 명성도 얻었고요."
◇ "테크닉 요구하는 슈트라우스, 텍스트 재미있는 말러"
드레이지와 경기필하모닉은 이번 공연에서 말러와 슈트라우스 음악을 조명한다. 1부는 슈트라우스 가곡을, 2부는 말러 교향곡을 협연한다.
드레이지는 "슈트라우스는 성악적 테크닉을 요구하며, 말러는 텍스트가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는 공연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혼자 집중할 장소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공연은 자신과 싸움이다. 무대에 선 순간 누구도 가수를 도와줄 수 없다.
"목소리가 제 안에 있는 것임에도 저와 따로 노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어요. 공연장에 도착하면 목을 풀고, 목소리와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죠. 그다음에 공연장 음향을 체크해요."
이 당찬 소프라노는 음악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인터뷰 내내 텀블러에 미리 담아온 물을 홀짝인 그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유럽에서는 환경문제가 매우 이슈랍니다. 제가 한국에 비행기를 타고 왔잖아요? 이미 매우 환경을 오염시킨 거죠. 그래서 더 조심해요. 길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새 물건을 살 때도 환경에 줄 영향을 생각하죠. 공인(Public person·公人)으로서 좋은 영향력을 나누고 싶어요."
cla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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