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옷을 입은 '파리대왕'…연극 'R&J'
9월 25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올해 한국 공연계에서 부활했다.
미국 브로드웨이 화제의 뮤지컬 '썸씽로튼'이 셰익스피어도 웃게 할 재치 있는 오마주로 상반기를 장식했다면, 하반기는 연극 'R&J'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연극 'R&J' 측은 10일 동국대학교 이해랑극장에서 언론 시사회를 열어 주요 장면을 공개했다.
'R&J'는 셰익스피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남성 4인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1997년 미국 뉴욕에서 초연됐으며 국내에서는 지난해 여름 첫선을 보였다.
초연에 이어 재연을 지휘한 김동연 연출은 "새로운 배우들과 작품을 해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초연 때 좋았던 점을 크게 바꾸지 않되, 또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한다. 작중 현실 세계의 배경은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규율이 가득한 가톨릭 남학교다. 라틴어, 수학, 역사, 성경 학습, 고해 성사가 일과인 이곳 남학생 4명은 늦은 밤 기숙사를 빠져나온다.
이들은 비밀 장소에서 붉은 천에 둘러싸인 금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견한다. 소년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차례로 낭독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언어에 매료된다.
작품은 금기를 향한 도전의 연속이다. 이 남학교에서 셰익스피어를 탐독하는 것도, 사랑을 나누는 것도 금지된 일. 그러나 낭독을 거듭하며 학생들은 교과서로만 배운 사랑, 분노, 슬픔, 열정을 생생하게 느끼고 등장인물에 녹아든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던 남학생들의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때, 극장에는 충격과 짜릿함이 넘실댄다. 소품인 붉은 천이 머큐쇼와 티볼트의 결투 장면에서 칼로 변모할 때, 로미오와 줄리엣이 함께 밤을 보내는 침실을 장식할 때 팽팽한 성적 긴장감이 흐른다.
홍승안 배우는 "제 해석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진실이 될까 봐 무섭지만, 학생1(로미오)과 학생2(줄리엣)가 예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금서'가 상징하는 억압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들어가는 힘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대본을 쓴 극작가 존 칼라코는 작품노트에서 "많은 사람은 이 각색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영감을 받았으리라고 넘겨짚는데, 사실 난 그렇게 비교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실제 영감을 준 작품은 영화 '시련'(The Crucible)과 '파리대왕'"이라며 "억압이 정신증으로 귀결됨을, 또 정돈된 사회로부터의 격리가 원초적 폭력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등장 초반만 해도 말쑥한 교복 차림이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머리는 헝클어지고 목덜미는 땀에 흠뻑 젖었다. 복식호흡으로 고전적 발성을 내지르느라 가쁜 숨을 내쉬었다.
홍승안 배우는 "평소 쓰지 않던 어휘, 문장, 형식이 아름다우면서도 어려웠다. 그것을 이해하고 밖으로 꺼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그러나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의 말을 뱉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했다.
작품에서 로미오는 학생1(박정복, 지일주, 기세중 분)이, 줄리엣과 벤볼리오, 존 수사는 학생2(강찬, 강영석, 홍승안)가 연기한다. 머큐쇼 캐풀렛 부인, 로렌스 수사는 학생3(강기동, 손유동)이 맡았고 티볼트, 유모, 발사자는 학생4(오정택, 송광일)가 연기한다.
공연은 9월 25일까지. 관람료는 4만5천∼5만5천원이며 17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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