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日억지에도 '차분 대응' 기조…경제보복 철회에 역량 집중(종합)
'韓수출 화학물질 北반입' 日억지 의혹에 정부 "제재 충실 이행" 일축
文대통령 "맞대응 악순환 바람직 않아"…유명희 통상본부장 방미 검토
日 중재위 제안 시한(18일)과 참의원 선거(21일) 이후 태도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고은지 기자 = 일본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의 배경을 두고 대북제재 이행 문제를 언급하는 등 억지 주장을 펴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일축하면서도 맞대응은 자제한 채 보복 철회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고위 인사가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전용될 수 있는 불소 관련 물품을 한국에 수출했는데 북한으로 흘러 들어갔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우리는 4대 다자 수출통제체제 참가국으로서 이에 따른 의무사항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이어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조하에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4대 다자 수출통제체제는 핵물질과 관련한 원자력공급국그룹(NSG), 재래식무기 관련 바세나르체제, 생화학무기 관련 호주그룹(AG), 미사일기술 관련 미사일기술통제체제 등이다.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지난 5일 BS후지TV에 출연해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군사 용도로의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FNN(후지뉴스네트워크)는 그러면서 여당 간부를 인용해 "어느 시기 이번 불소 관련 물품에 대량 발주가 갑작스럽게 들어왔고 이후 한국 측 기업에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며 "불소 관련 물품은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행선지는 북(한)"이라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일본이 한국의 강제징용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경제보복 조치에 나섰으면서도 이를 대북제재 훼손에 대한 우려 때문인 양 억지스러운 설명을 한 데 대해 황당하다는 분위기가 많지만 일단은 차분히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외교 소식통은 "하기우다 간사장 대행의 발언은 일단 정치인의 주장일뿐 책임 있는 각료의 입장은 아니라는 판단"이라며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전날 BS후지TV에 출연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의 이유로 한국이 대북제재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 과거사 갈등을 경제 갈등으로 키운 데 이어 이를 '안보 갈등'으로까지 확전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선 즉각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상대국 정상의 정치적 발언에 정면 대응하면 상황을 악화시킬 뿐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이 추가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정부가 신중 대응으로 기조를 정한 배경으로 보인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해결 절차인 '중재위원회 구성'을 한국에 제안해 놓았는데, 오는 18일이 시한이다. 일각에선 이때까지 한국이 중재위 구성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으면 추가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편에서는 아베 정권이 보수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국 때리기'를 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어 21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이후에 어떻게 나올지 주시해야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외교부는 일단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최대한 관리하며 일본이 스스로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를 철회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펼칠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보복 조치가 한일 갈등을 크게 악화시켜 미국이 강조하는 한미일 협력에도 적잖은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으로 보내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또 일본 조치의 부당성을 정리한 자료를 조만간 재외공관에 내려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재외공관에서 주재국 인사들에게 설명할 때 부각할 내용을 담은 자료로, 일본의 조치로 세계의 교역 질서가 어지럽혀져 그 피해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이 이날 "무역은 공동번영의 도구여야 한다는 국제사회 믿음과 일본이 늘 주창해온 자유무역 원칙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조치 철회를 거듭 촉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부는 아울러 현재 4개월째 공석인 주일 경제공사의 발령도 서두르고 있다.
주일 경제공사는 인사혁신처에서 주관하는 외부공모직 자리인데, 한 차례 공모에서 적임자가 없어 현재 재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 서류접수가 완료됐고 조만간 면접과 검증 등의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일본 조치철회 촉구”…‘필요한 대응' 첫 경고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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