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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월북·北으로 영주…최인국씨, 분단현실 속 굴절된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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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월북·北으로 영주…최인국씨, 분단현실 속 굴절된 가족사
가족 모두 남·북·해외로 뿔뿔이 흩어져…2000년엔 이산가족 상봉도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북한으로 '영주'하기 위해 입북했다고 보도된 최인국씨는 남북 분단과 현대사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복잡다단한 가족사를 겪었다.
북한 대남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7일 게재한 기사에서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하여 7월 6일 평양에 도착하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보도대로라면 최인국씨도 '월북'을 택했던 부모의 전철을 밟게 된 셈이다.
최씨의 아버지인 최덕신은 남한에서 외무장관까지 지낸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미국 망명 중이던 1986년 4월 아내 류미영과 함께 북한으로 영구 이주했다.
최덕신은 국군 제1군단장에 이어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장관과 서독 주재 대사를 역임하며 '반공 인사'의 길을 걸었고 이후 천도교 교령도 지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 등으로 인해 1976년 부부가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이후 최덕신은 수차례 방북하며 김일성 주석을 만났고, 결국 월북을 선택했다.

최덕신·류미영 부부는 6·25전쟁 이후 사실상 최고위급 월북자로 북한에서도 고위직을 지냈다.
최덕신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고, 류미영도 1989년 남편이 사망한 뒤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지냈다. 천도교청우당은 민족종교인 천도교를 토대로 한 정파로, 북한 노동당의 우당(友黨·관변 야당)이다.
류미영은 2016년 11월 숨지기 전까지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대의원을 지내고 6·15 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 명예공동위원장을 지내는 등 대남 분야 등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최덕신·류미영 부부는 임시정부 주요 인사였던 독립운동가 최동오와 유동열의 아들과 수양딸로도 알려져 있다.
최인국씨의 할아버지인 최동오는 임시정부 법무부장과 임시의정원 법사위원장으로 일했다. 수양 외할아버지 유동열은 임시정부가 창설한 광복군 참모총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최덕신·류미영 부부가 북한으로 이주하면서 최인국씨를 비롯한 자녀들과는 남한과 북한, 해외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이산가족'이 됐다.
실제로 류미영은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으로 있던 지난 2000년 제1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의 북측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해 최인국씨 등 가족과 상봉하기도 했다.
이후 최씨는 2016년 류미영 사망 당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방북했으며 2017년 1주기, 지난해 2주기 때도 북한을 찾았다. 당시는 모두 정부의 방북 승인을 받았다.
독일에 거주하다 별세한 것으로 알려진 최씨의 형과 최인국씨 등 남은 자녀들은 부모의 월북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가 '도착소감'에서 "선친들의 유해가 있는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해 왔다며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는 발언을 한 것에서 볼 때 이번 입북에 개인적인 동기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kimhyo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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