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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풀리지 않는 키코 갈등, '제2의 즉시연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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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풀리지 않는 키코 갈등, '제2의 즉시연금' 될까
분쟁조정위 '일부 배상' 권고할듯…은행들 수용 안하면 그만
관련자들 퇴직, 자료도 폐기처분…"법적 판단 대신 정무적 판단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홍정규 성서호 기자 = 10년째 풀리지 않은 '키코(KIKO) 갈등'이 결국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판단을 눈앞에 뒀다.
분조위는 은행들에 일부 배상을 권고할 것으로 보이지만, 은행들이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이 경우 지난해 보험사들이 금감원 권고를 거부한 '즉시연금 사태'가 재연되는 셈이다.
3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다음달 초나 중순께 분조위를 열어 지난 1년간 벌인 키코 사태 재조사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수출 기업들이 주로 환위험 회피 목적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기업 732곳이 약 3조3천억원의 손실을 봤다.
이들 기업은 소송을 걸거나 금감원에 민원을 냈다. 사기 혐의로 은행들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전국에서 중구난방식으로 소송이 벌어지자 대법원이 나서 2013년 전원합의체를 통해 키코 계약이 불공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사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불완전판매'를 몇몇 사례에서 인정했다. 금감원이 이번 재조사에서 집중적으로 따진 대목도 불완전판매 여부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는 "키코는 대체로 사는 쪽이 위험을 떠안는 상품이었다"며 "단순히 상품 구조 때문이라면 배상이 어렵겠지만,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분쟁조정 대상은 일성하이스코와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4개 업체다.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 금액은 1천500억원이다.
현재로서는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은행이 기업들의 손실액 중 20∼30%를 배상하도록 하는 조정안이 가장 유력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완전판매가 얼마나 인정되는지, 기업의 책임을 어느 정도로 볼지에 따라 배상권고 비율은 사안별로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기업은 소송을 내지 않았던 터라 분조위가 사실상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분조위 권고를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 분조위 권고는 양측이 모두 수용하지 않으면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은행들은 소멸시효(손해 발생으로부터 10년)가 지난 데다 유사 사례로 분쟁조정을 신청할 기업들이 많다는 점을 우려한다. 금액이 조 단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생명의 경우 즉시연금 과소지급 1건에 대한 분조위의 권고를 수용했다가 5만5천건에 대한 일괄지급 요구를 받았고, 이를 거부하면서 사태가 촉발됐다.
또 배상금액도 금액이지만, 이미 대법원이 '사기'는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사안에 대해 배상할 경우 내부적으로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금감원의 재조사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퇴직했거나 자료가 보관 연한 만료로 폐기된 경우가 적지 않아 불완전판매 입증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즉시연금 사태 때처럼 은행들이 금감원의 권고에 정면으로 맞서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즉시연금 과소지급 논란은 지난해 보험업계를 뒤흔들었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보험사들은 금감원의 권고를 거부한 채 계약자와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다만 키코 논란은 소멸시효 완성 때문에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은행들이 배상 권고를 거부하면 금감원만 머쓱해지고 마는 것이다.
박창균 중앙대 교수는 "키코 사태가 학술적인 논의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분조위에서 어떤 결정이 나든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은행들이 분쟁조정안을 거부할 수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는 결정이 난다는 데 의미를 둘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은행들이 법적 판단 대신 정무적 판단을 내릴지 주목하고 있다. 키코 배상은 윤석헌 금감원장의 소신인 데다, 금감원 권고를 거부하는 데 따른 부담감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키코 갈등은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해결을 촉구하는 사안"이라며 "은행들이 이를 전혀 모른 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했다.
so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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