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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리오그란데강 부녀 비극에도…'미국행' 희망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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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리오그란데강 부녀 비극에도…'미국행' 희망은 현재진행형
미국·멕시코 국경검문소 현장취재…"포기하지 않겠다" 망명신청 이어져
마타모로스 국경검문소, 3∼5개월 심사 대기…"2천100명 아직 기다려"


(마타모로스<멕시코>=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2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브라운즈빌과 맞닿은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 마타모로스시의 푸엔테 비에호 국경 검문소.
지난 23일 엘살바도르 출신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25)와 23개월 딸이 리오그란데강의 지류인 리오 브라보에서 익사한 지점으로부터 약 2㎞ 떨어진 곳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 도시인 마타모로스에 도착한 뒤 리오 브라보를 헤엄쳐 건너려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안타깝게 숨진 부녀의 꼭 껴안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관용 반(反)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에 불을 댕겼다.

기자가 찾은 이날 리오 브라보 강 위를 가로질러 미국과 멕시코를 연결하는 푸엔테 비에호 국경검문소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국경을 오가는 차량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도보로 국경을 건널 수 있도록 다리 위에 만들어진 인도 한 구석에는 한 남성이 철제 펜스에 기대어 서 있었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리카르도 페르난데스(39)는 34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 탓인지 이마에 맺힌 땀을 연신 훔쳐대며 미국 국경 쪽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페르난데스는 부인, 6살배기 아들과 함께 베네수엘라를 떠나 멕시코에 도착한 지 2개월이 다 돼 간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의 망명신청 차례가 다가왔다는 소식은 여전히 받지 못했다.
그는 극심한 정치·경제 위기로 국민 대탈출이 이어지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출신이다.
페르난데스는 건강보험 등을 운용하는 사회보장 기관에서 일했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정책 방향에 이견을 표출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른바 '콜렉티보'로 불리는 친정부 민병대로부터 계속되는 살해위협에 시달리자 탈출을 결심했다.
그의 가족은 도보로 베네수엘라-콜롬비아 국경 지역으로 간 뒤 버스를 타고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로 이동했다.
보고타에서 집과 자동차 등 전 재산을 팔아 마련한 돈을 털어 비행기를 타고 지난 4월 멕시코 몬테레이에 도착했다.
이후 마타모로스에 도달하자마자 미국 망명심사 신청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미국의 반이민 정책 탓에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페르난데스가 마타모로스에 있는 3개의 국경검문소 중 한 곳인 푸엔테 비에호 국경검문소 앞에서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른바 푸엔테 누에보로 불리는 푸에르타 멕시코 국경검문소에서 공식적으로 망명신청 접수가 이뤄지지만, 혹시나 미국 이민 당국이 불시에 이곳에서 망명심사 신청을 받아줄까 봐서다.
미 이민 당국이 푸엔테 비에호 국경검문소에서 가끔 망명심사 신청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페르난데스는 "기다림에 지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미국 정착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족과 함께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푸엔테 비에호 국경검문소 도보 통로의 다른 편을 차지하고 있던 프리샤(30)는 성 소수자 친구 8명과 함께 작년 12월 과테말라시티를 출발했다.
그는 온두라스 출신으로 타바스코 이민자 쉼터에서 만난 다른 성 소수자 친구 호세와 함께 푸엔테 비에호 국경검문소 다리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미 이민 당국이 예고 없이 망명심사 신청을 받아주는 '요행'이 일어나기를 바라서다.
프리샤는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싫어 과테말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과테말라에서는 다르다는 이유로 살해위협에 계속 시달렸다"면서 "미국 정부가 단지 안전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환경 속에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 이들을 배척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가 찾은 다른 국경검문소인 푸에르타 멕시코에서도 긴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이곳은 사실상 마타모로스의 주 국경검문소 역할을 하는 곳이라 망명 대기자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이날도 100여명의 이민자가 그늘 밑에서 삼삼오오 모여 새로운 소식이 들리기를 바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텐트촌 옆에 무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밑에 깔아놓은 담요에 누워 있는가 하면 몸 씨름을 하며 마냥 해맑은 모습이었다.
이민자 인도주의 지원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인 콜리디 카냐는 "미국에 망명심사를 신청하고 멕시코에서 3∼5개월가량 기다리는 상황"이라면서 "현재 이곳에서만 2천165명이 망명심사 차례를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엘살바도르 부녀의 사망사고 이후 언론이 이곳을 찾고 있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4개월째 마타모로스에서 대기 중이라고 밝힌 온두라스 남성은 "엘살바도르 부녀의 얘기를 들었다"면서 "미국에 있는 친척이 '빨리 국경을 넘으라'고 한 말에 선택한 무리한 도강이 화를 불렀다. 나는 무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경을 오가는 이들의 온정도 이어졌다.
텍사스주 번호판을 단 차량을 운전하던 초로의 여성은 차를 세우고 차창을 열어 미리 준비한 물과 과자를 나눠줬다.
미국 망명을 희망하며 마타모로스에 도착하는 중미 이민자들은 최근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는 멕시코의 이민 정책이 이달 들어 180도 변한 것과 무관치 않다.
멕시코는 과거에 미국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을 사실상 단속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부과 위협 이후 강경 단속 정책으로 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캐러밴·Caravan)이 늘자 경유지인 멕시코를 겨냥해 관세 카드를 활용해 압박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멕시코가 미국으로 향하는 중미 이민자를 막지 않으면 모든 멕시코산 수입품에 5%부터 시작해 최대 25%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양국 간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후 멕시코는 미국과 협상에 나섰고,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남쪽 국경 전역에 국가방위군을 배치하는 등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미국 망명 신청자가 심사 기간에 멕시코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미국과 지난 7일 합의하면서 일단 위기를 피했다.
양국은 45일 뒤에 멕시코가 취한 강경 이민 정책의 효과와 결과 등을 평가할 계획이다.
마타모로스에서 근무 중인 한 경관은 작년 연말께 가족 단위 이민자들이 급증했다가 최근 들어 멕시코 정부의 불법 이민 단속 강화로 주춤하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penpia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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