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트럼프 공격지시'에 테헤란 뒤숭숭…"전쟁까진 글쎄"
국지전 불안 속 "미국이 이란과 전면전은 안할 것"
"미 무인기 명중 우리 군사 기술 생각보다 첨단" 스스로 놀라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군의 무인정찰기를 격추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에 보복 공격하려다 10분 전에 명령을 전격 취소했다는 소식에 이란 테헤란은 주말 동안 뒤숭숭했다.
테헤란 북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하이다리(52) 씨는 21일 "전쟁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가 실제 이란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제저녁에 가족과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기도 했다"라며 "트럼프는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라 더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약국에서 일하는 사라 마수메(33)씨는 22일 "트럼프가 직전에 공격명령을 취소했다는데 이란을 위협하려고 거짓말한 것 같다"라며 "이란과 전쟁을 하면 유가가 엄청나게 오를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섣불리 전쟁을 벌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나쁜 일이 반복되면 전쟁 가능성은 커져 이란 사람들에게는 좋은 상황은 아니다"라며 "별다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한국 주재원은 "한국에서 회사 동료와 가족, 친구들에게 '전쟁이 나는 게 아니냐'라는 카카오톡을 많이 받았다"라며 "실제 전쟁이 터지면 가족이 국외로 대피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란의 안전과 관련해 미군의 무인정찰기 격추라는 상당히 큰 악재가 터졌지만 지난해부터 긴장 상황이 계속된 때문인지 무덤덤한 반응도 많았다.
대학생 아크람 샤리피(22)씨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부근의 이란 남부 미사일 기지를 겨냥해 부분적으로 폭격할 수는 있지만 전면전은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전쟁을 실제로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이라크와 전쟁을 겪은 테헤란 시민 파르나즈 씨는 "'7년의 성전'(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서부 국경지대는 전투가 치열했지만 테헤란과 같은 대도시는 정부의 통제하에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다"라며 "미국과 전쟁도 국지전 정도로 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미국이 테헤란을 공격하면 당장 이스라엘 텔아비브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미국의 군사력을 이길 나라는 전 세계에 없지만 이란과 전쟁은 양측 모두에 큰 피해를 낳게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만 해도 악재가 생기면 10% 이상 출렁이던 이란 외환 시장도 22일과 23일 안정세를 보였다.
가격이 2천억원에 달하는 미군의 첨단 무인정찰기를 한 방에 격추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시민도 있었다.
음식 배달원 알리 씨는 "깜깜한 새벽에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다는 미군 무인기를 이란군이 미사일로 맞혔다고 해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라며 "우리의 군사 기술이 그렇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건설회사를 다니는 야샤르(48)씨는 이란군의 무인기 격추에 대해 "미군이 이란의 반응과 대공 군사력을 떠보려고 '미끼'를 던진 것 같다"라며 "혁명수비대가 과잉 대응한 측면이 있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계속 후퇴하게 돼 격추에 찬성하는 사람도 많다"라고 전했다.
테헤란에서는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전쟁의 문턱까지 다다른 현재 위기가 미국 탓이라는 쪽으로 여론이 점점 기울고 있다.
시장에서 견과류를 파는 알리 레자(41)씨는 "전쟁은 인터넷 게임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약속(핵합의)을 어기고 경제적으로 이란을 제재하더니 이제 군사 전쟁까지 하려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이란의 생사가 달린 것처럼 말하는 트럼프는 매우 오만한 사람이다"라며 "사람이 오만하면 결국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라고 꼬집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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