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브 배신에 총리직 꿈 접었던 존슨…이번에는?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테리사 메이 총리의 뒤를 이어 영국을 이끌어나갈 신임 총리 후보가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과 제러미 헌트 현 외무장관 2명으로 압축됐다.
두 사람은 20일(현지시간) 보수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나머지 동료 8명을 제치고 최종 당원투표 대상에 올랐다.
일단 오는 22일부터 16만명의 보수당원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우편투표에서도 존슨이 한발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존슨은 일간 더타임스가 조사업체 유고브에 의뢰해 지난달 10∼16일 보수당원 8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총리 설문조사에서 39%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보수당 지지 활동가들이 만든 웹사이트 '컨서버티브홈'(ConservativeHome)이 지난 4월 평당원 1천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지율 조사에서도 존슨은 3명 중 1명꼴인 32%의 지지를 받아 선두를 차지했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가 그대로 투표로 이어지면 존슨이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변수는 있다.
여러 후보를 놓고 실시한 여론조사와 달리 당원 우편투표는 존슨과 헌트 2명만을 대상으로 한다.
보수당 내 EU 잔류 지지자를 중심으로 브렉시트와 관련한 존슨의 강경한 태도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2016년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도 보수당 내에서는 '보리스만 아니면 누구도 상관없다'(Anyone But Boris)는 기류가 거세지기도 했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인한 그동안의 말실수 등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헌트 역시 이날 차기 당대표 후보가 자신과 존슨으로 좁혀지자 "나는 언더독(underdog)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정치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며 총리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사실 존슨은 이미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에 이미 차기 총리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
이날 열린 당대표 경선 5차 투표에서 탈락한 마이클 고브 환경장관과 함께 존슨은 2016년 국민투표 당시 EU 탈퇴 찬성 캠페인을 주도했다.
국민투표에서 예상 외로 EU 탈퇴가 결정되자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는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승리를 이끈 존슨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명문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존슨은 일간 더타임스와 텔레그래프 등 유력지를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금발의 더벅머리와 직설적인 화법으로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2001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뒤 2008년과 2012년 런던시장을 역임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괴짜지만 추진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총리가 되겠다는 존슨의 꿈은 그러나 옥스퍼드 동문으로 30년 지기인 고브의 배신으로 물거품이 됐다.
존슨은 영국의 EU 탈퇴 캠페인에서 좌장 역할을 맡았고, 고브는 존슨의 최측근이었다.
존슨이 총리가 되면 고브는 내각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존슨과 고브의 동행은 고브가 당시 보수당 당대표 경선 후보 등록 마감 몇 시간을 앞두고 독자적인 출마를 선언하면서 끝이 났다.
고브는 "EU 탈퇴가 더 나은 미래를 줄 것이라고 주장해 온 존슨 뒤에서 팀을 이뤄 돕기를 원했지만 그가 리더십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출마의 변을 밝혔다.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보리스가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팀을 단결시키고 당과 나라를 이끌 능력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고브의 출마 사실이 전해진 뒤 약 9시간 후 존슨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자신은 자격이 없다며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존슨은 이어진 경선에서 자신을 배신한 고브 대신 앤드리아 레드섬 당시 에너지차관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유력후보였던 존슨이 불출마하면서 EU 잔류파였던 테리사 메이 당시 내무장관이 결국 캐머런의 뒤를 이어 2016년 7월 영국 총리직에 올랐다.
메이 총리 내각에서 존슨은 외무장관을 맡았지만 결국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계획에 반발해 지난해 7월 사임했다.
EU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의회에서 세 차례나 부결된데 대한 책임을 지고 메이 총리가 조기 사퇴를 발표하자 존슨은 다시 EU 탈퇴 진영의 지원을 배경으로 유력한 총리 후보로 떠올랐다.
이어진 경선 투표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존슨이 과연 2016년의 아픔을 딛고 꿈꿔오던 총리직에 오를지, 아니면 헌트에 가로막혀 또다시 주저앉을지에 영국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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