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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제작자 "영화 본 뒤 불편함, 일상의 에너지 됐으면…"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51) 대표는 지난 5월 칸영화제 폐막식 때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와 함께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곽 대표를 무대로 불러낸 봉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많은 아티스트가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지원해준 바른손과 CJ에 감사드린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17일 한남동 사무실에서 만난 곽 대표는 잇단 겹경사 덕분인지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국내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으며 관객 800만명을 돌파했다.
곽 대표는 "복이 넝쿨째 들어왔다"면서도 "저는 그저 서포터였을 뿐"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곽 대표는 1990년대 시네필 사이에서 필독서로 꼽히던 영화 전문잡지 '키노' 창간 멤버로 3년간 일했다. 이어 LJ필름, 신씨네 등 영화사에서 마케팅 업무와 프로듀서를 했다. 2010년 바른손 영화사업부 본부장과 바른손필름 대표이사를 거쳐 2015년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이사가 됐고, 강동원 주연 영화 '가려진 시간'(2016)과 '희생부활자'(2017·공동제작)를 제작했다.
곽 대표 집안은 영화인 집안으로 유명하다. '친구'(2000)의 곽경택 감독이 오빠이고, '은교'(2012), '침묵'(2017)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이 남편이다.
다음은 곽 대표와 일문일답.
-- 칸영화제 폐막식 당시 잔뜩 긴장한 표정이 화면에 잡혔다.
▲ 황금종려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상식을 보면서 켄 로치 감독 등 놀라운 이름들이 먼저 불리면서 우리 영화만 남았다. 그때 "어 정말 우리 영화가?" 하는 표정이었다. 재밌고 짜릿한 순간이었다. 황금종려상이 워낙 큰 상이고, 어떤 상인지 잘 아니까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 봉 감독, 송강호와 함께 시상식 무대에 섰는데.
▲ 만약 황금종려상을 받게 되면 송강호 선배님도 무대 위로 올라갈지 말지 사전에 상의하긴 했다. 그러나 저는 이야기가 없었다. 봉 감독님이 나가면서 저희 둘 다 빨리 나오라고 손짓했고, 무대 위에서도 계속 손짓하셔서 제가 머뭇거리면 시간만 지연될까 봐 나갔다. 칸영화제 무대 위에서 객석을 보는 '뷰'는 아무나 볼 수 있는 '뷰'는 아니다. 모두 우리를 축하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 '기생충'은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 봉 감독의 '마더'(2009)를 바른손에서 제작했다. 당시에는 문양권 회장(현 대표이사)이 제작자였고, 그때 인연으로 봉 감독이 제작을 먼저 제안했다. 당시 저는 '가려진 시간' 제작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봉 감독과 작업은 '기생충'이 처음이지만 옛날로 거슬러가면 인연이 있다. 저는 '키노' 출신이고, 봉 감독은 '키노'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99권을 모두 모을 정도로 열혈 독자였다. 감독님이 제가 쓴 글을 봤다.
-- 언제 '기생충' 시나리오를 봤나.
▲ 2015년 4월 봉 감독님과 만났다. 15페이지짜리 시놉시스를 들고 왔다. 그때 처음 읽었는데, 기존에 없던 이야기였고, 엄청 재밌었다. 애초 시놉시스에는 지하실 이야기는 없었다. 2017년 8월에 봉 감독이 지하실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4개월간 시나리오를 한 땀 한 땀 써서 그해 12월 30일 완성된 원고를 줬다. 그때 쓴 원고가 촬영 전까지 거의 바뀌지 않았다.
-- 봉 감독과 협업은 어땠나
▲ 저는 서포터였다. 봉 감독님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최대한 속속들이 알고 있었는데, 봉 감독이 하고자 하는 것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웃음) 봉 감독은 굉장히 합리적인 분이다. 예를 들면 반지하 세트 크기도 예산, 컴퓨터 그래픽(CG) 등을 모두 체크한 뒤 촬영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봉 감독이 먼저 최소 규모로 줄였다. 뭐든지 알아서 먼저 하는 것이다. '봉비어천가' '팬심'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예를 들면 야외 신을 찍을 때 일조량이 너무 강해 제작진 건강 등이 걱정됐는데, 봉 감독 본인이 (그런 것을 고려해) 너무 더운 것 같으니 해당 장면을 가급적 나중에 찍겠다고 제안했다.
-- 제작자로서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 봉 감독 한명과 작업하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송강호 배우와 홍경표 촬영 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등 A급 스태프까지 모두 패키지로 왔다. 캐스팅과 스태프 구성이 제작자의 주요 일인데, 그런 면에서 저는 복이 넝쿨째 들어온 것 같다. '거저먹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 작품성뿐만 아니라 흥행도 모두 잡았다.
▲ 시나리오와 감독, 배우, 스태프 실력을 고려할 때 400만∼500만 정도 들 거라고는 예상했다. 운이 좋으면 700만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800만명을 돌파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 관객들 사이에선 "재미는 있지만 씁쓸하고, 불편하다"는 평이 많이 나온다.
▲ 영화의 끝이 서로 사이좋게, 행복하게 윈윈하는 방식으로 끝난다면, 현실과는 다른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현실과 너무 닮아서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은 영화를 제대로 봤다는 것이어서 오히려 고맙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인데,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각자 일상과 현실에서 뭐가 달라질 수 있는지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 불편함이 에너지가 됐으면 좋겠다. 자영업을 하다가 망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고, 사교육비가 없어서 입시 준비를 못 하는 아이들이 대학을 잘 못 가는 것이 현실이다. 돈으로 인한 한계나 문제 등이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평소에도 한다.
-- 각자 경험에 따라 영화평도 다른 것 같다.
▲ 영화가 관객에게 구경거리가 아니라 밀접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바람직하다. 작품이 개인들과 적극적인 소통이 됐다는 얘기여서 감사할 뿐이다.
-- 엔딩크레디트에 제작자인 곽 대표 이름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보다 먼저 올라왔다. (한국영화에는 투자자 이름이 통상 먼저 오른다.)
▲ 봉 감독이 '설국열차'와 '옥자'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올린 것으로 안다.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었다.
- '기생충'의 성공으로 부담도 클 듯하다.
▲ '충숙'을 연기한 장혜진 배우의 인터뷰를 보면 제 마음과 똑같다. 그래도 어쩌겠나. 하던 대로 해야지. 제가 존중하고 매력을 느끼는 감독님을 최대한 서포트해서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 제 방향이다. '가려진 시간' 역시 제가 엄태화 감독의 작품을 찾아보고 매력을 느껴서 함께 작품을 하자고 했다. 위대하고 훌륭하며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감독들에 대한 존중이 크다. '가려진 시간'이 흥행에 실패한 뒤 회사에 민폐를 끼쳐 걱정했지만, 당시 회장님이 "영화가 좋잖아. 그냥 좋은 영화 만들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됐다.
- '기생충'의 흥행은 한국영화계에도 숙제를 던진 것 같다.
▲ 영화제와 극장에서 모두 환영받는 영화가 자주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관객이 경험했으니까 비슷한 영화가 나왔을 때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접할 수 있을 거라 본다. '기생충' 뿐만 아니라 '곡성' '아가씨'처럼 흥행 케이스가 쌓이면 새로운 창작자에게 새로운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본다.
-- 곽경택 감독과 정지우 감독은 뭐라고 축하해줬나.
▲ 우리 가족은 보통 가족보다 훨씬 가깝고 애틋하다. 자주 모이기도 하고, 사이가 좋다. 두 사람의 반응이 달라서 재밌었다. 오빠(곽경택)는 20년 이상 영화에 바친 제 인생이 이제야 간접적으로 보상을 받은 것처럼 부풀려서 축하해줬다. 남편(정지우)은 "살다 보니 곽신애에게 이런 일이 있네!"라고 하면서도 제가 이 일로 자칫 '오버'하거나 교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내 과거를 축하해주는 오빠와 미래를 다독여주는 남편 사이에서 행복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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