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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장비에 30대 배전공 추락사…억울함에 거리로 나온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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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장비에 30대 배전공 추락사…억울함에 거리로 나온 아버지
문제의 장비, 미인증 제품 확인됐음에도 경찰·고용부 '감감무소식'
유족 "소속 업체의 책임 있는 사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촉구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장사도 못 치르고 이러고 있는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억울해서, 너무 억울해서…"
불량 안전장비를 차고 고압전선 가설공사를 하던 중 추락사고로 숨진 30대 청년의 아버지 송긍식(64)씨의 눈시울이 금세 불거졌다.
돈이 없는 것도, 자식을 못 가르친 것도 죄라며 아들의 죽음이 "내가 죄가 많아서 일어난 것"이라고 자책했다.
송씨는 이달 5일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아들의 영정사진을 가지고 아들이 일했던 업체 앞 거리로 나왔다.
사고 당시 착용했던 장비가 불량이었고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지급한 업체에 책임이 있음에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송씨는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업체 앞에서 열흘 넘게 노숙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사고가 일어나서 사람이 죽었으면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한 뒤에 보상을 얘기해야 할 텐데 업체에서는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며 보상만 얘기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송씨의 아들 현준씨는 한국전력 협력업체 소속으로 지난달 3일 오전 11시 27분께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에서 고압전선 가설공사를 하던 중 추락사고를 당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현준씨는 수술을 받았으나 깨어나지 못하고, 2주가 지난 17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은 현준씨가 회복 불가라는 사실을 듣고 장기가 망가지기 전에 기증을 결심, 현준씨는 그렇게 4명에 새 생명을 주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유족 확인 결과 현준씨가 찼던 안전대는 줄과 벨트가 제각각인 짝짝이였던 탓에 제대로 결속되지 않았다.
유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거리로 나오면 뭔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힘이 없어 길바닥에서 속만 태우고 있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현준씨가 착용했던 안전대가 불량이 확실한 만큼 금방이라도 수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고,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한 어떠한 대책도 없기 때문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인제경찰서 관계자는 "양 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아직 조사 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유족은 문제의 장비가 산업안전보건인증원의 인증을 받지 않은 장비임이 고용노동부 강원지청의 조사에서 드러났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여태껏 회사 대표조차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며 수사 방식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사고 당시 안전관리자는 있었는지, 편제된 인원에 맞춰서 작업했는지, 사고 후 대처는 어땠는지, 안전대 적합 여부를 제대로 점검했는지, 각종 안전일지는 비치하고 작업했는지 등 궁금한 점 투성이지만 "수사 중"이라는 답변뿐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사망사고가 났으면 작업을 중지시키고서 안전 조치를 철저히 한 뒤 재개시켜야 하는 게 아닌지, 발주처인 한전도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는 것인지 의심이 또 다른 의심을 낳으며 힘없는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

안타까움에 친구를 찾은 박진원(65)씨는 "이번에 헝가리에서 난 사고를 보면 여행사 대표가 신속히 사과하고 후속대책도 빠르게 진행했다"며 "사람이 일하다가 죽었는데 업체 대표가 사과도 없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는 "누구 하나 책임지고 나서서 해결을 못 해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며 "친구들 가슴도 이렇게 찢어지는데 부모는 오죽하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족은 업체 측의 책임 있는 사과와 함께 제2의 현준씨를 막을 대책 마련을 원하고 있다.
송씨는 "내 아들을 포함해서 이 업체에서만 30년 동안 3명이 죽었다고 하더라. 10년에 1명꼴이고, 다친 사람은 훨씬 많을 텐데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송씨는 17일부터 한전 강원본부 앞으로 자리를 옮겨 시위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conany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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