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이 세우려 한 정부는 견제가 작동하는 공화정"
박태균 교수, '역사비평'서 임시조선정부 헌장 초안 분석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45년 해방 이후 북위 38도선 이남을 통치한 미군정이 한국에서 희망한 정부는 삼권분립과 지방자치제도가 명확하게 확립된 체제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계간지 '역사비평' 제127호에서 다룬 특집 '근대 한국의 공화 담론'에 게재한 논문 '미군정이 만들려고 했던 한국의 공화체제'에서 미군정이 소련에 제안한 임시조선정부 헌장 초안을 분석해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임시조선정부 헌장 초안은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있는 레오나르드 버치 자료에 있으며, 작성자가 밝혀지지 않았다.
제1장은 "임시조선민주정부는 통합된 한국의 유일한 정부가 돼야 한다"로 시작하며, 6∼10장에서 행정부·입법부·사법부 구성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박 교수는 "미군정 임시헌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정부 수반과 부수반을 입법기관에서 선출한다는 점으로, 국가수반에게 장관 임명권을 주었지만 국회에 의해 선출되고 국회 동의를 받도록 했다"며 "이는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의 특징적 부분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임시조선정부 헌장 초안 9장은 사법권을 규정했는데, 대법관 해임권을 정부 수반이 아닌 국회에 주었고 중간법원 법관 임명도 정부 수반이 국회 동의를 받아 하도록 했다. 또 지방법원 판사는 해당 지방에 임명권을 부여했다.
지방정부와 관련해서는 도위원회, 군위원회, 면위원회 위원을 보통선거로 선출한 뒤 위원회가 지자체장을 뽑고, 필요에 따라 경찰청장도 선임하도록 했다.
박 교수는 "미군정이 생각한 미래 한국 정부 공화정의 핵심은 일부 그룹에 의해 독재로 나아가지 않도록 합리적 견제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며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 사법부 독립, 지자체 권한 강화를 통한 중앙정부 견제를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헌장 초안 중에는 미국 제도와 다른 부분이 적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도 있다"며 "삼권분립과 지방자치 제도에 대한 내용은 제헌헌법이 일부 계승했으나, 1952년과 1954년 개헌을 통해 헌법에서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미군정은 삼상회의 결정안과 미소공위에 임하는 입장이 매우 진지했다"며 "미군정 내부 입장을 하나로 단일화하거나 좌우합작위원회와 미소공위를 미국이 분단정부 수립의 길에서 명분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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