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효과 상쇄시켜야"…'세종시 이전 재점검' 박근혜에 꼼꼼 제안
문화예술·언론계도 '좌편향' 낙인…"정무적 분석 가미하라" 정보국 독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보수정부 시절 정보경찰이 주요 선거 국면에서 야권 내부 갈등을 부각해 정부·여당에 유리한 판세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등 청와대 선거자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물론 문화예술계에도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여론에 대한 청와대의 부담을 줄이려 애썼다.
◇ "야권갈등 부각해 '세월호 악재' 타개"
3일 검찰이 발표한 '정보경찰의 선거·정치개입 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경찰청 정보국은 전국에 배치된 수천명 정보경찰을 동원해 당시 여권에 유리한 선거 판세를 만들려 했다. 이른바 '정책정보'라는 명목으로 진보진영을 무력화할 여론전 계획을 짜고 정부·여당에는 적극적인 선거전략을 제시했다. 2012∼2016년 치러진 세 차례 주요 선거 때마다 이 같은 보고서가 청와대에 올라갔다.
2016년 20대 총선 당시 경찰청 정보국은 "야당에 안보전문가 비례대표 공천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부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천을 둘러싸고 일어난 보수진영 내분 사태를 타개하는 방안이었다. "진보진영 시민단체의 낙선 운동 효과가 미미함을 부각해 동조세를 차단하고 보수단체를 활용해 맞대응"하는 방안도 내놨다.
20014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 때는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세월호 참사가 타개해야 할 '악재'였다. 경찰은 "보수언론을 통해 야권의 공천갈등 실태를 부각시켜 세월호 사고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시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진보교육감 당선을 막으려면 난립한 보수 후보들을 압박해 단일화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선거개입 활동은 이명박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보경찰은 대선을 8개월가량 앞둔 2012년 4월 "2030세대의 반여권 정서가 강하므로 젊은 층의 호감도가 높은 인사를 등용해야 한다"고 일찌감치 훈수를 뒀다. 2012년 대선 직전에는 '캐스팅 보트'였던 충청도 지역 여론을 분석하면서 '세종시 이전 이행상황 재점검', '과학벨트 홍보' 등 박근혜 당시 후보의 구체적 공약도 조언했다.

◇ 문화예술·언론계도 '좌편향' 집중감시
당시 야권뿐 아니라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진보진영 전체를 '좌편향'으로 낙인찍는 정보기관의 구태는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기간 연장을 두고 갈등이 벌어진 2016년 6월 "내부분열이 감지되니 투입된 인력·예산을 부각시켜 여론 동조를 차단하라"고 제안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를 설치하면 "좌파단체의 지역거점이 될 우려가 있다"거나 연말정산에서 전교조 조합원비 공제를 제재해 자금줄을 압박해야 한다는 건의도 했다. 장학관 자격요건을 강화해 전교조 출신 임명을 억제해야 한다는 법률 조언도 있었다.
동향파악을 명목으로 문화예술계와 언론계에서도 '좌파 솎아내기'가 벌어졌다.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계기로 집중감시 대상이 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서는 집행위원들의 도덕적 해이 사례를 부각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영화 '변호인'의 흥행에 따라 여론이 악화하지 않도록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제안과 함께, 사회비판 영화의 강세를 해소할 만한 인사에게 영화진흥위원장을 시켜 안보·북한 인권 영화 제작을 독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경찰은 언론계에도 '좌편향' 딱지를 붙였다. YTN은 "직원 40%가 호남·충청 출신으로 야권에 호감이 상당하고 노조 강성화·좌편향 기조가 노골적인 상황"이라며 보수성향 사장 선임과 민영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KBS·MBC에 대해서는 우파 성향 임원 선임이, 연합뉴스에는 정부구독료 적정성 검토가 대책이라고 했다.

◇ 청와대 파견 나간 경찰 간부가 지시 전달
검찰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고위간부를 치안비서관으로 파견 보내는 경찰과 청와대가 유착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판단했다.
2016년 총선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 강조사항을 확인하고 정보활동을 지시했다. 지시를 여과 없이 경찰청 정보국에 전달한 치안비서관과 치안비서관실 행정관은 대부분 현직 경찰이었다.
정보경찰이 청와대에서 내려간 지시사항만 이행하지는 않은 것으로 검찰은 본다. 경찰청 정보국은 "보수 지지층 이탈 제어 등 정무적 분석을 가미"하도록 교육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인 2016년 9월까지 대선 공약집을 사전에 입수한 정보관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등 선거판에 적극 뛰어들었다.
정보관들이 생산한 보고서는 지시 계통에 따라 다시 청와대로 보고되는 과정에서 '킬(탈락)'되기도 했다. 이는 보고서를 작성한 정보관뿐 아니라 해당 부서와 경찰서 평가에도 반영됐다. 정보관들은 스스로를 '점수의 노예'라고 불렀다.
전국에 배치된 정보경찰은 3천여 명이다. 특히 경찰청 본청과 별도로 마련된 정보국 산하 정보분실을 거점으로 삼는 정보관들이 정부 부처는 물론 국회·정당·검찰·법원 등을 상시 출입하며 매일 동향보고를 올렸다. 2015년을 기준으로 종교·언론계와 시민단체를 담당하는 분실이 별도로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상부의 지시·요구가 있을 경우 그에 부합하는 활동만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국가정보기관의 정치개입, 국민사찰 등 반헌법적 행위가 근절되고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하게 발전하는 데 이번 수사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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