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목숨바친 한국, 더 늦기 전에 꼭 보고 싶었어요"
한국찾은 6·25 참전 미군 전사·실종자 유가족들 '절절한 사연'
한국 처음 방문한 84세 할머니 "유해라도 꼭 찾고 싶어서…"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매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어요.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6·25 참전 미군 실종자 유가족으로 한국을 처음 찾은 조 레이너트(84) 씨는 66년 전인 1953년 남편 해럴드 진 스펜서 씨와 헤어지던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반도에서 터진 전쟁이 결혼 2년 차 신혼부부의 운명을 영원히 갈라놓게 될 줄은 그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27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레이너트 씨는 "당시 18살이었던 남편은 친구들과 함께 자원입대를 신청해 6·25에 참전하게 됐다"며 "걱정이 됐지만, 남편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남편이 한국으로 떠난 직후였다.
스펜서 씨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린 아내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레이너트 씨는 '한국은 너무 춥다. 따뜻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순찰을 하든 전투를 하든 주변이 너무 캄캄해 아군도, 적군도 구분할 수 없다'는 편지 내용을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냈다.
스펜서 씨는 휴전을 목전에 둔 1953년 7월 전투 중 실종됐다. 어린 아내는 그 충격 속에 유산의 아픔까지 겪었야했다.
레이너트 씨는 "매년 워싱턴에 있는 참전비(한국전 참전기념공원)에 갈 때마다 '이제는 남편 유해가 돌아왔겠지'하는 기대를 품고 가보지만, 그런 기대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전쟁 이후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감탄스럽다"며 "남편이 목숨 바쳤던 나라를 보게 돼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셜리 앤 마이너(71) 씨와 카렌 마리 제겐(66) 씨의 사연도 절절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이너 씨의 부친 아사 로렌스 로우 씨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됐다.
마이너 씨는 당시 아버지가 비행기 폭발 직전 수동으로 비행기 문을 열어 전우들이 탈출할 수 있게 돕고, 절친한 전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아버지 전우들을 통해 나중에 알게 됐다고 한다.
마이너 씨는 "한국에 오고 나서 아버지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용감하셨던 아버지가 정말 그립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제겐 씨의 아버지는 1953년 벌어진 고지전인 '폭찹힐 전투'에서 전사했다. 제겐 씨는 당시 10개월 된 어린 아기였다.
제겐 씨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머러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며 "손주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북미 간, 남북 간 유해발굴 협의가 중단됐다는 소식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마이너 씨는 "다른 분들의 유해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기뻤다. 만약에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며 유해발굴과 봉환을 위해 남북과 미국이 협력을 강화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다른 미군 전사자, 실종자 장병들의 유가족들과 함께 방한한 이들은 오는 31일까지 한국에 머물려 국방부의 유해발굴 진행 상황 브리핑을 청취하고,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모락산 내 유해발굴 현장도 직접 살펴볼 예정이다.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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