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세상] "목숨 걸고 원주민 보고 왔다" 험지 찾는 사람들
부르키나파소 피랍 사건 이후에도 여전한 위험 지역 여행 수요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이세연 인턴기자 = "10월 중순에 모로코 사하라 사막 지역을 중심으로 열흘 정도 여행할 예정입니다. 동행할 분 4∼5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인터넷 유명 여행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자신을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아이디 'anor****'는 계획한 동선을 공개하며 여행을 함께 떠날 이들을 찾고 있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그가 여행지로 언급한 지역은 외교부가 여행경보 3단계 적색경보(철수 권고)를 내린 지역이다. 과거 인접 국가와 무력 충돌이 벌어졌던 곳으로 매설된 지뢰가 제거되지 않았고, 테러 위협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0일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게 붙잡혔다가 프랑스군에 구출된 40대 한국인 여성 A씨가 여행경보가 내려진 아프리카 여러 국가를 다녔던 것으로 알려지며 위험 지역 여행에 대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외여행 관련 인터넷 카페 등에는 이러한 지역에 대한 문의나 함께 갈 동행자를 찾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일부 여행사는 아예 철수 권고가 내려진 지역에 대한 여행 패키지를 주력 상품으로 홍보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강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만큼, 여행자 스스로 안전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다.
◇ 피랍 사건 이후에도…위험 지역 여행 문의 이어져
외교부가 국가별 안전 수준을 고려해 위험 등급을 정한 뒤, 이에 맞는 행동 요령을 제시하는 게 여행경보다. ▲ 1단계 남색경보는 신변안전유의 ▲ 2단계 황색경보는 여행 필요성 신중 검토 ▲ 3단계 적색경보는 긴급 용무가 아닌 한 철수 또는 가급적 여행 취소 및 연기 ▲ 4단계 흑색 경보는 즉시 대피 및 철수와 여행 금지로 총 4개의 등급으로 나뉜다.
여행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상위 단계의 여행경보가 내려진 나라를 가겠다는 글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네이버의 한 여행 카페에서 '5034***'란 아이디는 "에티오피아 남부 지역 등에서 '셀프 부족 투어'를 할 예정입니다. 다른 후기 보니까 위험하긴 한가 봅니다. 같이 여행 계획 짜서 안전하게 돌아오실 분 연락해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다음 달부터 9월까지 함께 여행할 서너명 정도의 동행자를 구한다는 그는 에티오피아, 마다가스카르 등을 거치는 여행 동선을 공유했는데, 모두 여행경보 지역 2∼3단계에 포함된다.
부르키나파소에서 한국인 피랍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위험 지역을 찾는 여행가들이 있다. 오지 여행 전문이라고 홍보한 한 여행사 관계자는 1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최근 여행경보 지역에 대해 경비나 일정 등을 묻는 상담 건수는 예전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피랍 사건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3단계 적색경보에 해당하는 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여행 패키지 상품을 내놓은 N여행사 관계자는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해당 국가의 여행 패키지를 문의하는 전화가 늘었다"며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직항 노선도 최근 마련됐다"고 말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여행경보 지역이란) 사실은 따로 알리지 않고 있다. 고객들이 알아서 인지해야 할 부분"이라며 "정말 위험한 지역이라면 왜 직항 노선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자유여행 늘면서 여행지 다양화…SNS 채널 통한 과시욕도
전문가들은 미리 짜인 단체(패키지) 여행보다 나 홀로 떠나는 개별 여행이 대세로 자리 잡으며 위험이 상존하더라도 색다른 곳을 여행하려는 수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최근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찾은 해외 여행지를 공개하고 공감을 얻는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측면이 있다"며 "과거와 달리 위험 지역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과 평범하지 않은 지역에 다녀왔다는 자기과시 심리도 이런 유행에 일조했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튜브 검색창에 여행 관련 키워드를 넣으면 아프리카나 중동 등 여행경보가 내려진 국가에 다녀온 여행 콘텐츠가 수십 개 등장한다. 이 가운데 '관광객에게 총 쏜다는 에티오피아 원주민을 만나고 왔다', '팔레스타인 갔다가 생명 위협을 느꼈다' 등 3단계 적색경보가 내려진 국가에서 위험을 겪은 경험을 공유하는 영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지난 2월에는 한국인 여행객이 멕시코의 한 우범 지역에서 심야에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다 귀중품을 빼앗기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해외여행 자체가 늘기도 했지만 이러한 험지 여행의 증가 경향이 해외여행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느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2017년 10월 외교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해외에 나가서 당한 사건·사고 건수는 매년 늘고 있다. 사고를 당한 여행객 수는 2013년 4천967명, 2014년 5천952명, 2015년 8천298명, 2016년 9천290명 등 4년 새 곱절 이상 증가했다. 특히 연락 두절이나 행방불명은 2016년에만 348명으로 나타났다.
외교부 관계자는 "여행경보 제도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여행을 하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 없다"며 "지나친 여행 제한은 기본권 침해로 비칠 여지도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경보 4단계에 해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라크 등의 지역을 찾았을 경우에만 처벌(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되고, 이보다 약한 단계의 경보가 발령된 지역의 여행은 여행객 스스로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이어 "여행자 스스로가 위험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하고, 해외에서 위급 상황이 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영사콜센터(국내 02-3210-0404, 해외 +82-2-3210-0404) 번호를 숙지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이 밖에 외교부가 만든 '해외안전여행'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면 여권 분실이나 도난, 자연재해 등 해외여행 중 맞닥뜨릴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한 대처 매뉴얼과 각 대사관 연락처를 열람할 수 있다.
외국 항공사 승무원 출신의 신혜은 여행작가는 "여행자는 '여행 중 일어나는 일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며 "위험 지역을 피하고, 밤늦게까지 홀로 돌아다니지 않는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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