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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내 혈액 흐름도 '박테리아 속도계'로 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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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내 혈액 흐름도 '박테리아 속도계'로 잰다
미 프린스턴대 연구진, 슈도모나스 균 '속도 반응' 특성 발견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인간의 피부 세포는 산들바람과 강한 바람을 다르게 느낀다.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건 피부에 부딪히는 바람의 반발력이다.
그런 공기 흐름의 반발력이 없으면 속도의 차이를 감지하기 어렵다. 창문이 닫혀 있을 경우 사무실 안에 있든, 속도를 내는 자동차나 비행기 안에 있든 느낌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박테리아가 주변 유체의 흐름을, 힘(force)이 아닌 속도(speed)로 감지한다는 사실을 미국 프린스턴대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박테리아가 유체의 흐름에 반응한다는 연구보고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박테리아가 감지하는 건 흐름의 속도가 아니라 힘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속도에만 반응하는 박테리아의 이런 특성을 더 연구하면, 완전히 새로운 항생제 개발의 길이 열릴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이 연구를 수행한 프린스턴대의 제머 기타이 분자생물학 교수팀은 14일(현지시간) 관련 연구보고서를 저널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Nature Microbiology)' 인터넷판에 발표했다. 대학 측은 연구보고서의 개요를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했다.
보고서의 수석저자도 맡은 기타이 교수는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박테리아로 속도계로 만들었다"라면서 "실제로 이 박테리아는 유체 흐름의 속도를 재는 실시간 센서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실험한 박테리아는 '슈도모나스 에루지노사(Pseudomonas aeruginosa)' 속의 병원성 녹농균이다.
인체 외에도 흐르는 물, 토양 등 온갖 곳에 서식하며 심내막염, 폐렴, 수막염 등을 일으키는 이 박테리아는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에 의해 '심각한 위협(serious threat)'등급으로 지정됐다. 미국 내 의료기관에서만 한해 5만여 명이 감염된다고 한다.
슈도모나스 균은 관 형태의 구조물을 좋아하고, 흐르는 물에서 주로 서식한다. 인체 내에선 혈액, 요로(urinary tract), 소화관, 폐 등에 많이 감염된다. 수술 후 감염의 주요 매개체인 카테터(도관) 같은 의료장비도 슈도모나스가 좋아하는 서식처다.
기타이 교수는 "슈도모나스가 흐르는 물을 좋아한다는 건 오래된 얘기고, 이번엔 유체의 흐름을 감지해 반응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면서 "흐르는 유체 안에 있는 슈도모나스는 (유체 속도 등에 반응해) 행동을 바꿀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슈도모나스는 유체의 흐름을 감지할 뿐 아니라 속도까지 재서 그 결과에 따라 일군의 유전자를 발현하게 했다. 연구팀은 이들 유전자를 '흐름 제어 유전자군(flow-regulated operon)'의 머리글자를 따 'fro'로 명명했다.
연구팀은 이어 슈도모나스가 빛을 내게 하는 유전자와 fro를 생체공학 기술로 연결해 눈으로 보는 속도계를 만들었다. 이 속도계는 주변 유체의 흐름이 빨라지면 슈도모나스의 빛이 더 밝아지는 식으로 작동했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슈도모나스가 반응하는 속도의 범주는, 인체 내 혈관의 혈액이나 요로의 소변이 흐르는 빠르기와 일치했다.
연구팀은 흐름의 속도 단위로 '전단율(shear rate, 유체 층이 서로 미끄러져 지나가는 속도)'을 썼는데, fro는 인체 내 대부분의 유체 흐름보다 느린 초당 8 미만의 전단율에선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반면 전단율이 초당 40부터 400까지 범위 안에 있을 때 fro는 전단율에 맞춰 반응 강도를 조정하면서 안정을 유지했다. 평균 직경의 인간 정맥에서 전단율은 초당 100 정도로 이 범주 안에 있다.
연구팀은 오직 유체의 속도에 반응하는 박테리아의 독특한 메커니즘을 기존의 유사 실험 결과와 구분하기 위해 '리어센싱(rheosensing)'이란 신조어도 만들었다. 리어센싱은 '흐름 탐지'라는 뜻이다.
슈도모나스가 주변 유체의 속도를 감지해서 어떤 이득을 얻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병원체로서의 유연한 반응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이 교수는 "인간에 비유하면 슈도모나스는 서로 공격법이 다른 무기들을 창고 가득히 갖고 있다"라면서 "유체의 흐름과 속도를 아는 것이, 주변 환경에 대한 반응을 조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che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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