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교착국면서 '조절된 무력시위'…한반도 대화재개에 영향주나(종합)
비건 방한 앞두고 '양보없다' 메시지…美 대응과 中·러 반응 주목
유엔 식량난 보고 속 대북인도지원 논의에 영향 줄지도 관심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정성조 기자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국면에서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 발사를 감행함에 따라 향후 북미협상 등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은 4일 오전 9시 6분경부터 9시 27분경까지 강원도 원산 북방 호도반도 일대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단거리 발사체 수발을 발사한 뒤 오전 10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역시 단거리 발사체 1발을 더 발사했다.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 등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전 9시대에 발사된 발사체에는 탄도미사일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는 게 당초 군 관계자의 설명이었지만 오전 10시 이후 발사된 한 발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하노이 이후' 미국은 대북 압박을 고수하고, 북한은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 등을 통해 '배후'를 다지는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북한이 무력시위를 통해 '판 흔들기'를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일괄타결 요구를 접고 '단계적 접근' 방식에 입각한 '영변 핵시설 폐기 대(對) 주요 제재 해제'의 거래를 받아들이라는 대미 압박 메시지를 던진 것이자, 작년부터 조성된 한반도 평화 국면의 '취약성'을 드러내 협상의 시급성을 압박한 셈이다.
다만 북한이 이번에 쏜 발사체에는 '중거리 이상' 사정의 탄도미사일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는 점에서 북한 나름대로 '수위'를 조절한 행동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발사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4일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반(反)작용인지 북한 내부의 어떤 군사훈련 목적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 연구위원은 "경제적으로는 자력갱생을 추구하면서 전략적 도발을 제외한 군사조치는 취해나가는 일종의 '새로운 길' 일환일 것"이라며 "한미가 대규모 합동 군사연습은 하지 않지만 (규모를 줄인) '동맹 연습' 등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미국에 합의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하지 않되, 다른 것들은 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선 한미 대북정책 협의를 앞둔 상황에서 이뤄진 이번 무력시위에 한미 양측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7일부터 10일까지 일본과 한국(방문순서 기준)을 잇달아 방문할 예정이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북 강경기조를 주도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이달 방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당장은 신중한 기류가 감지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4일 전화 협의를 통해 추가 분석을 지속하는 한편, 신중히 대처하면서 계속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북한의 행동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미가 신속히 소통하면서 일단 신중한 대응 기조를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역시 신중한 대응 기조를 보였다.
합참이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했던 1차 발표를 '단거리 발사체'로 약 40분 만에 신속히 수정한 점, 범정부 차원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가 아닌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개최한 점, 우려를 표명하는 등의 공식 입장을 내면서 청와대 대변인 '서면 브리핑' 형태를 취한 점 등에서 대응 수위를 신중하게 조절하는 듯한 기류가 읽혔다.
미국 백악관도 발사체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점을 고려한 듯 세라 샌더스 대변인 명의로 "북한의 활동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감시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기류는 한반도 정세가 '대화'와 '대치' 국면 사이의 교차로에 진입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다만 '하노이 결렬' 이후 미국 조야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이 힘을 얻는 흐름에 이번 북한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줄지 주시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입장이 갑자기 더 강경해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압박 기조에서 후퇴해 북한의 요구인 '단계적 접근' 및 제재 완화 쪽으로 한발 다가갈지는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현재로선 우세해 보인다.
중국, 러시아 등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북미협상 교착 상황에서 '원군'이 필요한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이 두 국가가 앞으로 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무력시위를 계기로 중, 러가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미국이 제재 문제 등에서 보다 유연해지라는 목소리를 내는 한편,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다자협상'을 추진하려는 시도가 북중러 3각 공조 하에 이뤄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북한의 발사가 이뤄지기 하루 전인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북 제재 완화 문제를 거론했다고 크렘린궁이 밝힌 바 있다.
그와 더불어 남북관계 맥락에서 한국 정부가 검토 중인 대북 인도적 지원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북한의 식량 생산이 최근 10년 사이 최악이라는 유엔 기구 보고서가 나온 상황에서 한미는 비건 대표의 9∼10일 방한 계기에 대북 인도적 지원을 매개로 국면을 관리하는 동시에 대화의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미국도 인도적 대북지원에는 유연한 입장을 누차 밝힌 바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이번 발사체 발사가 부정적 여론 등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 양측의 돌파구 마련 노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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