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석탑은 한국이 '석탑의 나라' 된 시발점"
목탑에서 석탑으로 나아가는 과정 보여주는 건축물
(익산=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미륵사지 석탑 건립은 7세기 이전 목조건축에 치중한 당시의 문화적 소양을 깨트린 쾌거였고, 이를 통해 이 땅이 '석탑의 나라'가 되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석조미술을 전공한 미술사학자 박경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저서 '한국 석탑의 양식 기원'에서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을 이같이 평가했다.
20년에 걸친 해체·보수를 마치고 30일 준공한 미륵사지 석탑에는 으레 현존 국내 최대(最大)·최고(最古) 석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비록 상층부가 무너져 원형을 알 수 없으나 높이가 14.5m에 이르고, 건립 시기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여서 1천40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
미륵사지 석탑은 규모와 시기뿐만 아니라 양식 면에서도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목탑이 석탑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1층은 각 면이 3칸으로 구성되고 가운데 칸에는 문을 내달아 계단을 통해 사방으로 통하게 했다"며 "목조건물처럼 기둥돌 하부에 초석을 두고, 옥개석(屋蓋石·지붕돌)은 목조건축물 지붕처럼 모서리 끝을 살짝 올린 귀솟음기법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석탑 1층 내부에는 십자형 공간을 조성해 동서남북에서 출입이 가능하며, 탑 중심에는 여러 개의 사각형 돌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심주(心柱)가 4층까지 존재한다. 이 같은 형태는 다른 석탑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미륵사지 석탑만의 특징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 끝내고 역사적 준공 / 연합뉴스 (Yonhapnews)
박 교수는 백제인들이 익산 미륵사지에 석탑을 세운 이유에 대해 "익산시 금마면과 황등면에는 양질의 화강암이 있다"며 "7세기에 이르러 백제 석공들은 석재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기술적 자신감이 충분했고, 그들만의 역량을 바탕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탑에 사용한 석재가 1천627개라고 밝혔다. 이처럼 많은 돌을 쌓아 올리려면 하중 분산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박 교수는 "면석과 기둥, 초석은 외벽체 하중을 받아내고, 내부를 채운 석재의 하중은 1층 탑신의 십자형 통로를 중심으로 외곽에 구축한 사각형 적심체가 지지하도록 했다"며 "이원적 구조 덕분에 미륵사지 석탑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륵사지 석탑은 벽돌로 만든 중국 전탑의 영향을 받지 않고, 목조 건축기술을 석조건축에 베풀어 놓은 탑"이라며 "규모와 양식은 물론 구조적인 면에서도 중국 불탑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건립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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