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세 번째 추경…경기대응 '약발' 통할까
미세먼지서 시작했지만 경기대응에 초점…"0.1%포인트 성장률 제고"
정부 성장률 목표 2.6∼2.7% 달성에 의구심…국회 조기통과도 불투명
전문가 "규모 더 키웠어야" vs "눈앞의 성장률 중요치 않아"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문재인 정부가 24일 내놓은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은 제목을 '미세먼지·민생'으로 잡았다.
현 정부 들어 세 번째인 이번 추경은 '미세먼지'를 맨 앞에 내세웠지만 재원 재분을 보면 '민생' 지원을 목적으로 삼은 경기 대응에 무게가 실렸다.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둔화하는 흐름을 고려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번 추경이 올해 성장률을 0.1%포인트 높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경기 하강 속도에 비춰봤을 때 더 큰 규모로 편성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추경의 생명인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반발하고 있는 만큼 국회 처리 기간이 길어질 수 있어서다.
◇ 미세먼지에서 시작한 추경…대내외 여건 악화하며 경기대응에 방점
추경이 처음 공론화된 것은 미세먼지가 사상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달 6일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서다. 문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추경을 긴급 편성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이후 추경 논의에 힘을 실어준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지난달 12일 IMF가 올해 성장률 목표(2.6∼2.7%)를 달성하려면 국내총생산(GDP)의 0.5%(약 9조원)가 넘는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대내외 경제 여건도 악화하며 추경을 통해 경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IMF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10월 3.9%에서 3.7%로 내린 것을 시작으로 지난 1월 3.5%, 지난 9일 3.3%로 석 달마다 0.2%포인트씩 내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올해 1월 3.5%에서 3.3%로 하향 조정했다.
미중 무역갈등,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신흥국 금융 불안 등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이어진 결과다.
대내 측면에서는 우리 경제의 대들보인 수출이 작년 12월부터 4개월 연속 감소했고, 투자 부진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2∼3월 취업자가 20만명 넘게 늘었지만, 제조업은 고용 침체에 빠져 있다.
그 결과 이번 추경의 재원 배분은 경기 대응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6조7천억원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4조5천억원이 선제적 경기대응과 민생경제 긴급 지원에 할당됐다.
미세먼지 등 국민 안전과 관련된 재원 배분은 ⅓인 2조2천억원에 머물렀다. 이 가운데 산불 대응이 중심이 된 안전투자를 뺀 실제 미세먼지 예산은 1조5천억원으로 전체 추경의 22%를 차지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면한 경기 하방 위험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자칫 우리 경제가 위축되고 서민경제 어려움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선제적이고 보다 과감한 경기 대응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 추경으로 정부 성장률 목표 달성 쉽지 않을 듯…국회도 변수
정부는 추경안이 선제적이고 과감한 경기 대응 조치라고 여기지만 이 정도 규모로 올해 성장률 목표 2.6∼2.7%를 달성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추경을 통해 하반기 경기 회복 추진력을 만들어 올해 GDP 성장률을 0.1%포인트 높일 것으로 분석했다.
통상 추경은 전체 투자 규모의 50% 내외로 성장률 효과가 나타난다. SOC 투자나 자본재 지출, 인건비 지출에서 효과가 가장 크고, 융자성 투자는 효과가 낮다.
이호승 기재부 1차관은 "추경안 중 지역 기반 SOC 확충, 친환경 설비·공기청정기 보급, 취약 계층 인건비성 투자는 효과가 크지만 수출이나 벤처 융자는 규모에 비해 효과가 낮다"며 "4개 분기에 걸쳐 나타나는 효과는 올해 ⅔가 발생해 0.1%포인트인 약 1조5천억원 정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0.1%포인트로는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약발'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8일 2.5%로 0.1%포인트 내렸다.
국내 연구기관들도 성장률 전망을 내렸거나 하향을 검토 중이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21일 기존 전망(2.5%)에서 0.2%포인트 낮춘 2.3%를 제시했다. 이 전망은 이번 추경으로 0.1%포인트 제고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작년 11월 2.6% 전망을 했던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한국 경기 판단을 '둔화'에서 '부진'으로 바꾸며 하향 조정을 시사했고 한국금융연구원도 수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금융사들은 더 비관적이다. 영국계 시장분석기관인 IHS마킷은 1.7%를,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2.1%,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4%를 각각 제시했다.
이러한 전망을 종합하면 정부 분석대로 추경을 통해 성장률을 0.1%포인트 올린다고 하더라도 목표치인 2.6∼2.7%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도 추경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홍 부총리는 목표치의 하단인 2.6%를 언급하며 "추경만으로 달성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추경과 함께 올해 초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가 발표한 정책, 또는 그를 넘어서는 추가적인 보강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안이 조기에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은 점도 변수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하자 배수진을 치는 모양새여서 추경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추경의 핵심인 집행의 '타이밍'과 '속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작년 정부가 제출한 3조8천억원 규모 청년일자리 추경안은 이른바 '드루킹 사건' 정국으로 국회가 멈춰 서면서 제출 이후 45일 만에야 통과됐다. 2017년 11조원 규모 일자리 추경도 역시 통과에 45일이 걸렸다.
정부가 분석한 0.1%포인트는 내달 추경안 통과를 가정한 결과다.
이호승 1차관은 "통과 시점이 늦어지면 전체 효과는 같더라도 올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전문가 "경기진작에 규모 모자라" vs "눈앞 성장률 제고 중요치 않아"
전문가들은 추경 규모가 현재 경기 상황을 고려했을 때 부족하다는 평가를 주로 내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성장률이 내리는 폭은 0.1%포인트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로는 경기진작 효과가 거의 없다"며 "10조원 정도는 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도 "사정상 본예산과 겹쳐 있어서 대규모 추경을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다"면서도 "경기 진작 효과가 아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올해 세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추경 규모를 늘리는 데 부담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하지만 경기가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급락하고 있어 경기를 회복시키는 규모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 교수는 "노후 SOC 교체와 같이 실제로는 경기 부양 효과가 있다고 보기가 어려운 사업들이 꽤 있다"며 "수출과 투자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재원이 명확하게 사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눈앞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동할지 모르니 추경을 미리 많이 해 둘 수는 없는 일이기에 현재 경기 변동상황에서는 규모가 그나마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다"며 "0.1%포인트 차이로 위기가 오는 상황까지는 아니다. 세간의 관심이 성장률을 올리는 데 너무 맞춰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경기는 일시 하향이 아니라 동력이 없어지는 상황이기에 당장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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