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스타셰프 보투라의 '세계 최고 식당'에 韓요리사 입성
최종호 셰프, 모데나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 면요리 부문장 맡아
"한국적 색깔의 메뉴도 선보이고파…도전하면 새로운 길 열려"
(모데나[이탈리아]=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슈퍼카 페라리와 발사믹 식초의 고향인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는 최근에는 식도락가 사이에서도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2016년에 이어 작년에도 세계 최고의 식당으로 뽑힌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이하 프란체스카나)가 모데나 시내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
이탈리아의 스타 요리사 마시모 보투라(56)가 1995년 문을 연 이곳은 영국에서 발행하는 권위있는 잡지 '레스토랑'이 선정한 '세계 50대 식당'에서 2016년 1위를 차지한 뒤 이듬 해 2위, 작년에 다시 1위를 탈환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코스 요리의 경우 한 끼에 1인당 30만원을 훌쩍 넘는 높은 가격이지만, 대기 시간만 수개월 소요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이곳에 한국인 요리사가 공식 입성해 눈길을 끈다.
서울과 싱가포르의 유명 식당에서 셰프로 경력을 쌓은 최종호(38) 씨가 작년 8월부터 이 식당의 면과 쌀 요리를 전담하는 프리미(primi) 파트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
프란체스카에 그동안 한국인 요리사가 인턴이나 연수자로 잠깐씩 스쳐 지나간 적이 있으나, 정식 셰프로 채용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조우현 셰프가 운영하는 삼청동의 이탈리아 식당 '플로라'를 거쳐 싱가포르 최고의 식당으로 꼽히는 '레스토랑 안드레'에서 일하던 그는 정통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고 싶어 작년 3월부터 1개월 간 프란체스카나에 연수를 왔다가 그의 실력과 성실성을 눈여겨 본 보투라에게 발탁돼 이탈리아에 눌러 앉게 됐다.
그는 현재 이곳에서 면과 쌀로 만드는 요리를 관장하는 프리미 파트장을 맡아 이 식당의 파스타, 라비올리, 라자냐 등의 음식을 책임지고 있다.
자국 음식에 대한 콧대가 유난히 높은 이탈리아 식당에서, 그것도 '세계 최고'라는 칭호를 얻은 미슐랭 3스타 식당에서 동양 출신의 이방인이 이탈리아인들에게 '영혼의 음식'으로 통하는 파스타 부문장을 맡아 면 요리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더욱이 최 셰프는 해외 유수의 요리 학교를 졸업한 게 아니라, 고향인 의정부의 한 양식당에서 요리사로 입문한 뒤 군대(육군) 취사병을 거쳐, 삼청동 플로라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연마한 '토종 국내파'이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최종호 셰프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며 "실력뿐 아니라 요리사로서 확고한 철학까지 갖추고 있는 보투라와 함께 일하면서 정통 이탈리아 요리법뿐 아니라 셰프로서의 책임감, 음식과 세상을 대하는 자세 등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 셰프는 "보투라의 경우 식재료를 청결히 다루고, 고객에게 내놓을 음식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등 기본기를 누구보다 중시하는 게 특히 인상적"이라며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남은 재료는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소에 기부하는 등 환경과 소외층을 각별히 배려하는 그의 태도도 배우고 싶은 부분"이라고 밝혔다.
'영혼을 위한 음식'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설립해 기아와 잔반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기도 한 보투라는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당시 선수촌에서 나오는 잔반과 식재료들을 활용한 요리를 브라질 빈민가 거주자에게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최 셰프는 "이곳의 셰프들도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모데나 시가 운영하는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소에서 음식을 직접 요리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나중에 귀국하면 한국에서도 이런 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크지만, 30여 명에 달하는 동료 셰프들끼리 서로 배우고, 협력하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일주일에 이틀 쉬는 날 셰프들끼리 토론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식재료를 두루 이용해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과정도 큰 공부가 된다"고 이곳 생활을 설명했다.
그는 보투라가 한국과 한국 요리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어, 프란체스카나에서도 한국 소금과 흑마늘 등 한국산 식재료를 사용하고 있다고도 귀띔했다.
그는 "가끔 잡채, 갈비와 무말랭이,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 등 한국 음식을 동료들에게 만들어 소개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며 "앞으로 이곳에서 한국적 색깔의 메뉴를 선보이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소망도 피력했다.
그는 "제가 이런 인터뷰를 할 만큼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멋쩍어 하면서도 "새롭게 도전하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을 후배 셰프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2013년까지 7년 동안 플로라에서 일한 최 셰프는 30대 초반에 접어든 시점에 개업을 할까, 요리 공부를 더 할까 고민하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싶어 해외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도 처음에는 평범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했으나, "이왕이면 싱가포르에서 가장 좋은 식당에서 일해보자"는 욕심에 레스토랑 안드레에 무작정 찾아갔다고 한다.
레스토랑 안드레의 주인인 대만 출신의 안드레 치앙 셰프는 "일할 자리가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는 7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쉬는 날마다 찾아가 무보수로 묵묵히 손을 보탰고, 2014년 드디어 빈 자리가 나자 치앙 셰프는 그를 불러들였다.
싱가포르에서 4년 동안 일한 그는 이후 보투라와 친분이 있는 치앙 셰프의 소개로 세계 최고의 식당인 프란체스카나에 결국 둥지를 틀게 됐다.
한편, 보투라는 최 셰프에 대해 "여러모로 정말 놀라운 친구"라며 "우리 식당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한국과 한국 음식에도 관심이 많아 4차례 방한한 적이 있다고 밝힌 그는 "한국 음식은 솔직히 맛이 너무 강해 서구 사람들이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도 "불에 구워 먹는 갈비는 정말 환상적이다. 유럽과 이탈리아에서도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예상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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