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개별 공시가격 차이 원인은…'공시가 급등+지자체 오류'
지자체 공시가격 업무 개입은 처음…"산정시스템 검증 기능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국토교통부가 17일 서울 주요 지자체의 개별 단독주택(이하 개별주택) 공시가격에 대해 시정을 요청한 것은 올해 정부가 산정한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과 지자체의 개별주택 공시가격 격차가 이례적으로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표준-개별주택간 상승률 격차는 예년의 경우 통상 1∼2%대였다. 그러나 올해는 일부 구의 경우 개별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표준주택보다 최대 7%대까지 낮아지면서 표준-개별주택간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이에 변동률 격차가 3%포인트 이상 벌어진 서울 종로·중·용산·성동·서대문·마포·동작·강남구 등 8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오류가 명백한 456가구에 대해 시정을 요청했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공시가격 산정 업무에 직접 개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표준-개별 상승률 격차 '역대급', 원인은?
올해 표준주택과 개별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크게 벌어진 것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
일단 표준 단독주택 22만가구의 상승률이 전례없이 오른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표준주택은 개별주택 공시가격의 산정 기준이 되는데 표준주택은 개별주택에 비해 고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 공시가격의 형평성 제고를 위해 그간 현실화율(시세반영률)이 낮았던 9억원 초과 고가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의 상승률을 저가주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올렸다.
국토부가 1월 말 발표한 서울지역 표준주택의 경우 공시가격 3억∼6억원 이하는 8.45%, 6억∼9억원 이하는 9.35% 인상한데 비해 고가주택 중심으로 현실화율을 끌어올리면서 9억∼15억원 주택의 상승률은 평균 11.11%, 15억∼25억원은 23.56%, 25억원 이상은 37.54%에 달했다.
결국 고가주택의 비중이 큰 표준주택이 개별주택보다 상승률이 더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정부는 올해 고가주택의 현실화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예년에 비해 표준주택내 고가주택의 비중을 더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지자체의 산정 오류가 더해졌다.
국토부 검증 결과 지자체가 개별주택 가격 산정에 적용할 비교 표준주택을 잘못 선정하거나, 개별주택의 특성을 잘못 입력한 경우, 토지 특성이나 가격을 임의로 변경하는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국토부는 이번에 오류로 판단한 456가구의 90%인 410가구가 비교 표준주택을 잘못 쓰는 오류를 범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올해 정부가 9억원 초과 고가주택과 저가주택의 상승률을 차등 적용했는데, 지자체가 고가의 개별주택의 공시가격을 산정하면서 비교 표준주택으로 인근의 고가주택 대신 저가의 표준주택을 가져다 쓴 것이다.
인근 표준주택 가운데 상승률이 낮게 평가된 표준주택을 비교주택으로 끌어다 쓴 경우도 있다.
해당 개별주택 바로 인근에 A표준주택, 조금 떨어진 곳에 B표준주택이 있는 경우 A표준주택의 공시가격 상승률이 50%, B주택이 20% 올랐다면 가까운 A 대신 B를 비교 표준주택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런 오류들로 인해 바로 옆에 있는 표준주택과 개별주택의 상승률 격차가 크게 벌어진 곳도 나타났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개별주택은 지난해 공시가격이 4억9천100만원에서 올해 6억4천800만원으로 32%가량 상승했다.
바로 옆에 있는 표준주택의 공시가격이 지난해 6억7천800만원에서 올해 10억800만원으로 59.3% 오른 것에 비해 상승률이 절반 가까이 낮은 것이다.
또 성동구 성수동1가의 한 표준주택은 지난해 공시가격이 5억600만원에서 올해 9억1천500만원으로 81% 오르는데 비해 바로 옆에 위치한 개별주택은 4억7천200만원에서 6억7천200만원으로 42.4% 올라 상승률이 절반에 그쳤다.
국토부 관계자는 "비교 표준주택 선정은 지자체 판단에 따를 수 있도록 일정 부분에서 재량권이 인정된다"며 "이번에 재조정을 요구한 456건은 표준주택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멀리 떨어진 표준주택을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경우처럼 재량권으로 보기 힘든 것들"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그러면서 "지자체가 지역 민원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산정 과정에서 나타난 단순 실수였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자체의 개별 공시가격 검증 업무를 맡은 한국감정원에 대해서도 일부 부실 검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감사를 진행중이다.
그러나 8개 구의 표준-개별주택 상승률 격차에 비해, 오류 건수가 456건이면 예상보다 많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감정평가사는 "개별주택은 지자체에 산정 권한이 있고 재량권이 인정되는 만큼 정부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오류로 지적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자체 "가격 올리라니 난감"…"공시가격 검증기능 강화해야" 지적도
지자체는 정부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히면서도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당장 이달 30일이 공시가격 발표인데 현장 조사 등을 거쳐 가격을 수정하기도 빠듯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시정 요청이 대부분 앞서 공개된 예정가보다 상향하라는 요구여서 더욱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이미 공개된 가격을 더 올렸을 경우 소유자들의 반발이 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개별주택 공시가격과 개별 공시지가의 산정 권한은 지자체에 있는데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정부가 갑자기 고가 등 일부 부동산의 공시가격을 너무 높게 책정하는 바람에 생긴 혼란이 주요 원인인데 지자체에 문제를 떠넘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수의 지자체 공무원들이 개별주택 가격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주관이 개입되거나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개별주택 공시가격이나 개별 공시지가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한두 명이 대량산정모형에 의해 정부가 제공하는 가격비준표에 따라 산정한다.
표준주택 기준으로 층, 향 등 23가지 변수를 차등 적용해 개별주택이 처한 상황에 맞춰 금액을 자동 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두 명의 지자체 공무원이 수천, 수만 가구의 개별주택을 정교하게 선정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공시가격 검증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인 이강훈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공시가격 토론회에서 "개별공시가격 관리를 위해 주요 특성 또는 비교 표준주택의 변경, 인근 부동산과의 불균형 등 특이사항이 발생한 경우 검증을 의무화하고, 검증 오류 발생이 많은 지역에 대해서는 국토부가 지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부도 이에 따라 "개별주택 검증 및 감사 결과가 나오는대로 특성조사, 비교표준 부동산 선정 등의 오류가 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으로 걸러지도록 지자체의 개별주택 산정 시스템과 감정원의 검정 지원 프로그램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공시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요구도 커질 전망이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김우철 교수는 "현 공시제도는 2∼3개월 간 현장 조사나 분석을 통해 가격을 산정해 조사자의 주관적 자의성이 커지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며 "부동산 공시가격 상시 조사 체계를 구축하고 공시가격 조사 기능을 전담기관으로 통합해 통일된 조사방식과 기법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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