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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프랑스 가톨릭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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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프랑스 가톨릭의 성지
파리교구 주교좌 성당…각종 전례·역사 속 대관식도 거행
"부활절 앞둔 성주간에 큰 화재 안타까워…신앙인 반성 계기도"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15일 저녁(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큰 불길에 휩싸이면서 그간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성지나 다름없었던 대성당은 그 찬란했던 빛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16일 천주교주교회의 등에 따르면 파리 구도심 시테 섬 동쪽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는 물론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산실이다.
파리에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같은 성당이 10여개 정도 있다. 이들 성당마다 '우리의 어머니(성모 마리아)'라는 뜻을 지닌 노트르담이라는 단어가 성당 이름의 앞자리를 차지하지만, 종교적으로나 건축미에서 단연 으뜸을 꼽는다면 노트르담 대성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파리가 망가졌다"…노트르담 대성당 대화재에 눈물·탄식 / 연합뉴스 (Yonhapnews)
가톨릭계에서 대성당이라는 의미는 주교좌 성당을 의미한다. 파리교구장인 주교가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서울 명동대성당처럼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성당이란 뜻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천주교 의례를 뜻하는 각종 전례가 치러진 곳이다. 미사는 물론 사제서품, 견진성사 등 파리교구의 주요 전례가 집중되는 곳이다.
성당 내부에는 수백 년 역사 속 파리교구장들이 입은 제의나 포도주 잔 등 유서 깊은 성물이 다수 보관된 것으로 전해졌다.



1981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김건태 신부는 "노트르담 성당은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는 점을 넘어 파리 교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성당"이라며 "많은 왕이 대관식을 했던 곳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부활절을 앞둔 성주간에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신앙인으로서 조금 더 반성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립부터 현재까지를 돌아보면 파리, 프랑스 역사가 한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낸 '한국가톨릭대사전'을 보면 노트르담 대성당은 1159년 36세 나이로 파리 대교구장에 오른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이듬해부터 건축이 계획됐다. 성당은 무려 185년이 지난 1345년 파리 중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왕 루이 9세는 생 샤펠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노트르담 대성당에 예수의 가시관을 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1302년 필립 4세는 최초로 전국 삼부회를 노트르담에서 열었고, 1430년 영국 왕 헨리 6세의 대관식, 1455년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재판 등이 열리며 종교·정치의 중심에 선 곳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 때는 혁명군 보급 물자를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다가 1804년 교황 비오 7세 집전으로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현대사에서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주요 장면을 차지한다. 1차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예식이 1918년 11월 17일 이곳에서 열렸고, 2차 대전 때 독일에 맞서 싸웠던 드골 장군의 예식도 1944년 치러졌다.
가톨릭대사전은 "이(예식)는 단순히 공식적인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행복과 불행 속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섭리를 표현하는 전 국가적인 행사였으며 오직 노트르담 성당만이 그것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edd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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