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만난 정태춘·박은옥의 뜨거운 40년
40주년 맞아 광화문서 정태춘 붓글·현대미술가 오마주 작업 전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그림자 사진 귀퉁이에 흰 글씨로 '풍벽괘오영 이수여수문' 글귀가 적혔다.
가수 정태춘(65)이 2010년 자신의 그림자 사진을 출력한 뒤 붓글을 써 완성한 '자화상'이다. 작품은 전시 '다시, 건너간다'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들머리에 놓였다.
"'바람 부는 벽에 내 그림자를 걸고 너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묻네'라는 내용입니다. 저 자신도 잘 모르겠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하."
11일 '자화상' 앞에 선 정태춘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 건너간다'는 음유시인이자 노래투사로 불리는 정태춘-박은옥(62) 부부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기획자인 김준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은 붓글을 즐기는 정태춘의 작품과 부부의 예술 세계에 공감하는 미술가 50여명의 작품을 함께 모았다.
정태춘은 붓글 액자 하나를 가리키며 "내가 평생 노래를 부르고 붓글을 써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평생 나의 이야기를 해 왔다. 그것이 또, 누군가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며'라는 글귀가 보였다.
붓글 30여점 중 '박은옥 정태춘 40'이라고 적힌 액자도 눈길을 끌었다.
"40년간 정태춘·박은옥으로 활동해 왔으니 이번에는 이름을 바꿔봤어요. 힘든 길, 긴 여정을 여기까지 함께 왔으니 말로 감사하기엔 부족함에 허리를 꺾는다는 내용입니다."
정태춘은 작업을 붓글씨가 아닌 붓글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로 "글씨가 아닌 이야기라는 것"이라면서 "필법을 따로 공부한 바도 없고 막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서 계속 붓글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임옥상, 홍선웅, 이철수, 강요배, 이종구, 박영균, 김기라+김형규 등 현대미술가들이 보내는 '노래 운동가'에게 보내는 오마주도 감상할 수 있다.
안종연 '92년 장마, 종로'는 공연하는 정태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와 오랫동안 교우한 사진가 임채욱은 세상에서 제일 큰 LP판을 제작해 선보였다. 고향인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확장 저지에 투신했을 당시의 정태춘을 소재로 한 작업도 눈길을 끈다.
정태춘은 간담회 말미에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누런 초배지에 '천무이일 국무이민, 차별하지 마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두 왕이 있을 수 없다는 공자 말씀에서 왕을 빼고 백성을 집어넣었습니다. 차별과 소외 문제가 심각한 지금 우리 사회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했습니다."
전시는 29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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