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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계몽활동가 유관순 사촌올케…해방후에는 경찰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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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계몽활동가 유관순 사촌올케…해방후에는 경찰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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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계몽활동가 유관순 사촌올케…해방후에는 경찰 투신
    대구여자경찰서장 역임한 노마리아 경감…백범 권유로 경찰 입문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1919년 충남 천안에서 일제에 항거하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투옥돼 순국한 유관순 열사에게는 노마리아라는 사촌 올케가 있었다.
    노마리아는 유 열사 사촌오빠 유경석의 부인이었다. 그는 3·1운동 2년 전인 1917년 아들 유제경을 낳았는데, 당시 14세이던 유관순이 조카를 위해 직접 털모자를 뜨개질해 선물할 만큼 올케와 시누이 관계가 돈독했다.
    7일 경찰청에 따르면 189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노마리아는 1914년 공주 영명중학교를 졸업하고 계룡 원명학교와 아산 배영여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일본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쳐 총칼로 위협하며 유관순의 행적을 물을 때도 일절 발설하지 않았고, 유관순이 일경에게 연행될 당시에도 자신의 동생들을 노마리아에게 부탁할 만큼 두 사람의 신뢰가 두터웠다고 한다.
    사촌 올케 유관순 열사 외에도 노마리아 주변에는 아들 유제경, 시아버지 유중무,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어머니 이소제·사촌언니 유예도 등 일제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거나 옥고를 치른 독립유공자가 수두룩했다.
    노마리아도 1920년 고향 공주에서 '공금학원'이라는 야학당을 세워 운영하며 교육을 통한 민족 계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당시 일제가 금지곡으로 지정한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학생들에게 매일 부르게 하며 애국심을 고취했다고 전해진다.
    유관순의 후원자이기도 한 미국 선교사 사애리시(史愛理施, 미국명 앨리스 샤프)가 공금학원을 후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제가 외국인을 미국의 첩자로 간주하는 가운데 사애리시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공금학원도 폐교됐다.



    공주군 애국부인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노마리아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민족통일총본부 중앙협의회에서 활동하다 협의회 부회장이던 백범 김구와 인연을 맺었다.
    백범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지금의 경찰청장)이었다. 그는 "명령 계통이 선 곳에서 큰일을 해보라"고 노마리아에게 여러 차례 경찰 입문을 권유했다.
    이를 받아들인 노마리아는 1947년 경찰간부(경위)로 경찰에 입문했다. 1949년에는 경감으로 승진해 대구여자경찰서장을 맡아 1953년까지 경찰로 재직했다.
    경찰관으로 한국전쟁을 치르기도 한 그는 당시 국군 장교와 동거하며 아군 기밀을 입수한 여간첩을 검거하는 등 공을 세워 훗날 참전유공자로 인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유관순 열사의 가족 일원으로서 일제 강점기 선각 여성으로 민족 계몽활동에 헌신했고, 광복 후 여자경찰서장으로 활약하는 등 귀감이 되는 인물"이라며 "사료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독립운동 가담 사실이 확인되면 서훈심사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puls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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