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 '몸도 마음도 타버렸어요'…남겨진 동물도 후유증에 몸서리
그을리고 벗겨지고 '상처 가득'…동물보호 활동가 손길에도 경계심에 '낑…'
(고성=연합뉴스) 박영서 김주환 기자 = 붉게 충혈돼 퉁퉁 부은 초점을 잃은 듯한 눈, 검게 그을려 가늘게 떨리는 몸, 살갗이 벗겨져 하얗게 드러난 맨살.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강원 고성의 봄은 동물들에게도 너무나 잔혹했다.
6일 오전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찾은 고성군 토성면 인흥3리 마을은 고요했다.
평소 같으면 낯선 사람의 발소리에 우렁차게 짖었을 반려견들은 목소리를 잃은 듯 조용했다.
경계심과 산불 트라우마 탓인지 활동가의 손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 활동가가 불탄 건물 옆에 있는 우리로 다가가자 털 군데군데가 까맣게 그을린 반려견 한 마리가 멍하니 활동가들과 취재진을 쳐다봤다.
인흥3리에서 배 농사를 짓던 70대 주민이 키우던 '누렁이'다.
산불 탓에 집이 모두 잿더미가 된 이 주민은 "불붙은 집에서 너무 놀라 황급히 뛰어나오느라 챙길 여력이 없었다"며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했다.
활동가들이 목줄을 풀어주었으나 겁에 질렸는지 몸을 떨며 쉽사리 나오려 하지 않았다.
누렁이의 엉덩이와 오른쪽 다리에는 털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다행히 화상 흔적은 없었으나 화마는 누렁이의 마음을 새카맣게 태운 듯했다.
활동가들이 통조림에 든 고기를 내려놓자 누렁이가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에서 요 며칠 얼마나 배가 고팠을지 짐작이 갔다.
마을 한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화재로 무너진 닭장이 눈에 띄었다.
철창 사이로 숯덩이가 된 닭 10여 마리가 목숨을 잃은 채 곳곳에 널브러진 장면이 안타까움을 더했다.
구호활동 중 건물 여러 채가 불에 타 무너진 인근 펜션에 화상을 입은 유기견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나마 피해가 적은 창고 문을 열자 그늘에 웅크린 채 몸을 떠는 유기견이 '낑…' 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었다.
펜션 주인 곽모(50)씨는 "펜션 주변 마을에서 누군가가 키우던 개가 목줄을 끊고 도망쳤길래 밥을 주고 있었다"고 했다.
유기견의 등은 새카맣게 탔고, 검은 코는 살갗이 벗겨져 하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활동가들이 다가가 유기견을 들어 올리려 하자 겁에 질린 표명으로 낑낑대는 소리를 냈고, 켄넬(반려견 이동가방)에 넣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활동가들이 곽씨에게 "혹시 치료를 마치면 키울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곽씨는 머뭇거리더니 "당장 펜션 복구도 어떻게 될지 불확실해서 모르겠다"며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동물자유연대는 구출한 반려견들을 속초에 있는 한 동물병원으로 옮겼다. 응급처치하고, 화상 부위에 바셀린을 바르는 치료가 이뤄졌다.
겉모습만으로는 찾기 어려웠던 아픈 상처들이 수의사 앞에서 드러났다.
이 동물병원에 따르면 강원도수의사회 영동북부분회(고성·속초·양양·인제) 소속 동물병원은 화재로 화상 입은 가축이나 애완동물은 무상으로 일주일 치료를 하기로 했다.
다친 반려견 중 유기견은 월요일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유기견보호소로 옮겨져 보살핌을 받는다.
이 병원에서는 어제만 다친 반려견 7마리를 치료했고, 오늘 오전에도 2마리를 치료했다.
활동가들이 원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자, 원장은 "고맙기는. 내 고향이고, 나도 새벽에 불을 껐는데"라며 멋쩍게 웃었다.
동물자유연대는 화재피해 동물 치료비 지원 프로그램 운영에 나섰으며, 피해지역을 둘러보며 긴급구호 활동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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