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리더십' 최태웅 감독 "나는 배구에 미친 사람"
남자프로배구 챔프전 우승 지휘…"내년엔 통합우승 목표"
"배울 게 많은 초보 감독…선수들에 긍정 메시지 전하려 노력"
(천안=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명장(名將)이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직 배울 게 많은 초보 감독입니다. 나중에 '배구에 미친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남자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사령탑인 최태웅(43) 감독은 2018-19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대한항공을 3전 전승으로 따돌리고 2년 만의 챔프전 정상 탈환을 이끌었음에도 겸손함을 보였다.
챔프전에서 진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이 '최태웅 감독은 명장'이라고 추켜세웠음에도 31일 현대캐피탈의 훈련장 겸 합숙소 건물인 천안 캐슬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만난 최 감독은 '여전히 배울 게 많다'며 자신을 낮췄다.
선수 시절 '컴퓨터 세터'로 이름을 날라며 부동의 국가대표 주전 세터로 활약했던 최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국내 프로배구 사상 처음으로 선수에서 코치를 거치지 않고 2015년 4월 전격적으로 사령탑에 오른 최 감독은 현대캐피탈을 4년 연속 챔프전에 올렸고, 두 차례 정규리그 우승과 두 번의 챔프전 우승을 지휘했다.
삼성화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우승 청부사' 신치용(64) 진천선수촌장과 현대캐피탈의 정규리그 3회와 챔프전 2회 우승을 지휘했던 김호철(64) 남자대표팀 감독의 뒤를 잇는 화려한 경력이다.
최 감독은 올 시즌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나서 우리카드를 2전 전승으로 일축한 뒤 정규리그 1위 대한항공마저 3전 전승으로 제압하고 포스트시즌 5연승으로 챔프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특히 챔프 1차전에선 세트 스코어 2-2로 맞선 최종 5세트 6-9로 뒤진 상황에서 작전타임을 불러 '기적은 일어난다'는 말로 선수들을 독려해 기적 같은 6연속 득점으로 15-10 역전승을 지휘했다.
결국 현대캐피탈은 3연승으로 챔프전 정상에 올랐고, 최태웅 감독은 '기적의 리더십'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최 감독은 챔프전 승부의 흐름을 돌린 그 당시 장면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는 "챔프 1주일 전 팀 미팅을 하면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꿈은 이뤄진다'고 이야기했다"면서 "그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6-9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갑자기 '기적'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서 무심결에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선수들과 터놓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선수에서 곧바로 감독으로 발탁돼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지만 선수들과 많이 대화하며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소통의 힘'이었다고 한다.
그는 "선수들과 미팅할 때 전력 분석 말고도 영상을 보여주면서 선수들과 많이 대화하려고 한다"면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많이 전달하려고 하는데 그게 자리를 잡아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장인 문성민은 당시 기적적인 챔프 1차전 역전승 직후 인터뷰에서 "최태웅 감독님의 짧은 말 한마디가 선수들에게 큰 힘을 줬고, 우리 선수들이 합심해 역전승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최 감독은 코치로 지도자 수업을 거치지 않았지만 삼성화재 선수 시절 '명장'으로 손꼽히는 신치용 촌장과 감독-선수로 인연을 맺었고, 2010년 보상 선수로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후 김호철 감독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신치용 촌장님에게선 선수 관리에 대해, (이탈리아에서) 선진 배구를 경험한 김호철 감독님으로부터는 훈련 방법을 많이 배웠다"고 소개했다.
훈련 때는 질책도 마다하지 않고 선수들을 강하게 조련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선수들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그는 "훈련 시간 외에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생활하도록 한다"면서 "다만 훈련 시간에는 프로이기 때문에 모든 선수와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믿고 따라준 선수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특히 챔프전 우승 직후 벅찬 눈물을 흘린 건 혹독한 지도를 견디고 우승을 배달한 주전 세터 이승원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승원은 지난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전광인의 보상 선수로 주전 세터였던 노재욱이 한국전력으로 이적하면서 '경기 조율사' 역할을 맡았지만 불안함을 보여 최 감독으로부터 누구보다 많은 꾸지람을 받았다.
최 감독은 "인터뷰할 때 (이)승원이 이야기가 나오니까 이전에 고생하며 극복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갑자기 울컥했다"면서 "엄청나게 훈련을 많이 시켰고, 새벽과 야간에도 개인적으로 훈련하며 어려운 시간을 견뎌냈다"며 대견해 했다.
올 시즌을 마치고 FA로 풀린 이승원을 잡아 주전 세터로 재신임하려는 건 이승원이 포스트시즌을 거치며 크게 성장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승원 선수가 마지막에 자기가 가진 경기력을 늦게나마 펼칠 수 있었다. 펼치기 전 과정에서 안타까움이 많았다"면서 "자질은 충분히 있고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긍정적인 발전이 있었다. 워낙 노력형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이승원 외에 레프트 문성민과 센터 신영석, 리베로 여오현 등 우승 멤버 FA를 모두 잔류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는 "문성민과 신영석, 여오현은 당연히 잡는다"면서 "(문)성민이가 포스트시즌에 못 뛸 거로 생각했다. 경기에 투입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본인이 뛰겠다고 했다. 부상에도 뛰는 모습이 대견하고 책임감을 보여줬다. 그게 주장의 품격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이어 "(플레잉코치인) 여오현은 스스로 알아서 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고마운 부분이다. 마흔 한살인데도 플레이오프에서 놀랄 정도로 해줬다. 그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칭찬했다.
전광인을 언급하며 "배구를 정말 잘하고 승리욕이 강하다"고 높게 평가했다.
군 제대 후 시즌 포스트시즌에 합류한 센터 최민호에 대해선 "민호가 오면서 이승원 선수가 안정됐다. 중간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FA' 외에는 FA 시장에서 추가로 전력 보강을 하지 않지만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할 외국인 선수는 고민이 크다.
올해 주포로 제 몫을 해줬던 파다르가 러시아 무대 진출로 새로운 선수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포지션을 선택해야 할지는 참가 선수들의 인력 풀이 적어 우선 잘하는 선수를 뽑아야 할 것 같다"면서 "레프트 또는 라이트를 뽑을지는 현장에서 선수들을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고 설명했다.
올 시즌 부상 선수 속출로 정규리그 1위를 놓치면서 통합우승이 좌절된 아픈 경험 때문에 새 시즌에는 '부상 관리'가 최 감독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챔프전이 끝난 후에도 매일 훈련장으로 출근하는 건 문성민과 신영석, 여오현, 전광인 등 주전 선수들이 시즌 중 쌓인 피로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푸는 회복 훈련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최 감독은 "근육이 빨리 풀어지면 안 좋기 때문에 부상 선수들을 중심으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마무리훈련을 이번 주까지 해야 할 것 같다"면서 "다음 주에는 집에 가니까 주말을 이용해 펜션을 잡아 가족과 함께 1박 2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목표를 묻는 말에 "나는 명장보다는 배구만 보고, 배구를 연구하는, 배구에 미친 사람으로 불렸으면 좋겠다"면서 "올해 선수들의 부상 여파로 못했던 통합우승을 다음 시즌에는 꼭 달성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chil881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