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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 '대선前 김현희 데려와라'…87년 KAL기 사건 막전막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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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 '대선前 김현희 데려와라'…87년 KAL기 사건 막전막후(종합)
외교전문에 "늦어도 12월15일까지 이송위해" 언급…15일은 대선 전날
김현희 이송놓고 일본과 신경전·이송 지연에 '미국 때문인가' 의심도
막판 이송 늦춰지자 정부 당혹…"커다란 충격·너무나 많은 문제 제기"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31일 공개된 1987∼88년 외교문서에는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범인 김현희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한 외교 교섭 과정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사건 발생 초기, 일본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있던 김현희가 일본으로 이송되지나 않을지 정부가 신경을 곤두세운 상황, 대선(1987년 12월 16일) 전까지 김현희를 데려오기 위해 노력한 정황도 외교문서를 통해 다시 확인됐다.
특히 바레인 측이 신병 인도에 대한 결정을 미루며 한국 대선에 대해 언급하자, 우리 측 당국자가 미국이 바레인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막판에 이송 일정이 연기되자 외교부 고위관리가 "커다란 충격"이라며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바레인 측을 압박하는 장면에서는 대선 전에 데려오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사건 발생 초반 김현희 이송 놓고 일본과 '신경전'
김현희 이송에 대한 한일 간의 신경전은 사건 발생 사흘만인 1987년 12월 2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일대사가 외교부에 보낸 당시 전문을 보면, 주일대사관의 박련 공사는 도쿄에서 후지타 일본 외무성 아주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아국(한국)은 사고비행기의 소속국으로서 신병인도에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후지타 국장은 "(김현희 등이) 일본의 위조여권을 갖고 있음에 비춰 (용의자) 2명의 국적 등 신원확인 문제를 일본이 우선 책임을 가지고 신속히 해결해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행여 한일관계에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고 여겼는지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더라도 한일 양국의 우호협력관계에 어떠한 손상도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상호 긴밀히 연락, 협조해 나가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다음날 일본 도쿄신문에는 외무성 수뇌부를 인용해 '마유미(김현희)의 신병 인도와 관련, 1차적으로는 일본 정부에 청구권리가 있다. 여권법 위반 혐의 수사를 위해 신병 인도를 요청할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에 박련 공사는 전문을 통해 "한일 간에 신병인도 문제를 놓고 경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튿날 주일대사관 측은 일본 외무성을 다시 방문, "마유미에 대한 수사관할권 문제에 있어 한국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면서 "관할권을 가지고 다툼으로써 진상규명이 늦어지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 측은 "한국의 관할권 행사근거보다 (일본의 근거가) 훨씬 약하다"면서 한국에 우선권이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일본은 12월 7일 바레인 정부에 '바레인이 김현희를 한국 정부에 인도하기로 결정하면, 최대한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통보했고, "한국과 신병인도를 둘러싸고 경쟁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공식적으로 전했다.


◇"늦어도 15일까지 이송"…대선 활용 의도 뚜렷
전두환 정부가 KAL 858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황은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확인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 계획 문건 등으로 이미 사실로 확인됐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서도 이를 재확인할 수 있는데, 특사로 바레인에 파견된 박수길 외교부 차관보와 바레인 측 논의 내용을 담은 1987년 12월 10일 전문에 잘 나타나 있다.
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 실무자가 "KAL기 잔해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희) 인도가 성급하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하며, "늦어도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늦어도 15일까지 도착'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대선(12월 16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이 '김현희 인도 지연'에 개입했을 수 있다고 박 차관보가 의심하는 내용도 전문에 담겨있다.
그는 바레인 내무장관이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인해 극히 바쁜 중에 방문해 조속히 귀국하여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고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했다며, "마유미의 인도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미묘한(Delicate)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어 "마유미의 인도가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마유미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보고했다.
이는 미국과의 정보공유에 다소 소홀함이 있더라도 대선 전에 반드시 김현희를 압송하겠다는 정권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갑작스러운 인도 연기에 당혹…"커다란 충격·너무나 많은 문제 제기"
김현희를 인도받는 과정에서 당초 계획이 연기돼 정부가 당혹스러워하는 상황도 당시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레인은 김현희를 현지시간으로 12월 13일 오후 8시 (한국으로) 이송한다고 우리측에 통보했다. 대선 이틀전인 한국시간 14일 오후 2시 서울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출발을 5시간 앞둔 13일 오후 3시(현지시간). 바레인 내무장관은 현지에 있던 박수길 차관보에게 전화해 '이유는 밝힐 수 없다'면서 이송계획을 24시간 연기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박 차관보는 "인수를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시점에서 계획 변경은 커다란 충격"이라며 "연기는 우리측에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국내 사정으로 말미암아 마유미를 언제나 인수할 수 있는 입장은 반드시 아니다"며 바레인을 압박했다.
박 차관보는 한 시간 뒤 내무장관과 다시 통화한 뒤 "(바레인의) 일부 각료가 오늘 비상 각의에서 이의를 제기해 일단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대선 전 김현희를 데려온다는 계획에 막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정부는 주사우디 대사에게 사우디 정부에 연락해 바레인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하고, 바레인 고위직들과 친분이 있는 한일개발 조중식 사장과도 접촉하라고 지시한다.
이 와중에 바레인 산업개발부 차관은 '일본이 다시 관할권 문제를 제기한 것 같다'고 얘기하자 우리 측이 일본 측을 급히 접촉해 입장을 다시 확인하는 상황도 빚어졌다.
결국 바레인은 하루 뒤에 김현희의 이송을 승인했고 그는 우여곡절 끝에 대선 전날인 12월 15일에 한국에 도착했다.



◇ 정부, 유가족 현장방문 요청에 난색…북한은 "남한 조작" 주장
한국 정부가 김현희를 한국에 데려오는 데 혈안이 돼 있던 것과 달리 KAL기 폭파사건 발생 직후 유가족을 위로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정황이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발견됐다.
주태국 한국대사는 1987년 12월 6일 외무부 장관 등에게 보낸 문서에서 'KAL기 사고자 가족 300여명이 12월 9일 현장을 시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현 단계에서 유가족의 태국 방문은 수색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난색을 보이고 방문 보류를 건의했다.
북한은 KAL기 폭파가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강하게 부인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생명보험금을 노렸다는 주장까지 펼쳤다는 증언이 나왔다.
황장엽 당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서기 겸 국제부장은 1988년 9월 19∼22일 방북한 유럽의회 사회당 대표사절단을 만나 "KAL기 사건은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한 남한의 조작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외교 문서에 적시됐다. 이 내용은 사절단 관계자 발언을 인용, 주벨기에 한국대사가 그해 10월 7일 외무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transi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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