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46년만에 전모 파악…96책 국보 추가 예고
북한 갔다고 알려진 적상산사고본·어람용 봉모당본 첫 확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왕실에서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적은 귀중한 기록물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의 정확한 책수가 국보 지정 46년 만에 드러났다.
조사를 통해 국보로 지정된 2천124책 외에 국가기관과 대학에 96책이 소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에는 북한으로 전질이 넘어갔다고 알려진 적상산사고본과 왕을 위해 특별히 만든 어람용(御覽用) 봉모당본도 있으며, 최근 외국에서 돌아온 책도 있다.
문화재청은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7책, 오대산사고본 1책, 적상산사고본 4책, 봉모당본 6책, 낙질과 산엽본 78책 등 96책의 존재를 추가로 파악해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조선왕조실록은 1973년 12월 국보 제151호로 지정됐다. 제151-1호 정족산사고본은 1천181책, 제151-2호 태백산사고본은 848책, 제151-3호 오대산사고본은 74책, 낙질을 모은 제151-4호 기타 산엽본(散葉本)은 21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는 본래 한양, 전주, 충주, 성주에 세워졌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전주사고를 제외한 사고는 소실됐다.
이에 조선왕조는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4부를 재간행해 한양 춘추관·태백산·묘향산·오대산에 각각 보관했고, 전주사고본은 강화도에 두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강화사고도 피해를 봤고, 이로 인해 춘추관사고본 중 일부와 적상산사고본을 등사한 책을 강화사고본에 편입했다.
이후 강화사고 실록은 정족산사고로 이관했고, 묘향산 실록은 무주 적상산사고로 옮겨 태백산·오대산 사고와 함께 4개 사고 체제를 갖췄다.
현재 정족산사고본과 낙질을 모은 기타 산엽본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고, 태백산사고본은 부산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이다. 일본 도쿄제국대학으로 넘어갔던 오대산사고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으며, 적상산사고본은 북한에 있다.
이번에 추가로 지정 예고된 책 대부분은 2016년 조선왕조실록 책수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문화재청이 진행한 조사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다.
그중 정족산사고본 누락본 '성종실록'과 산엽본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었으나, 1970년대 지정조사 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대산사고본은 문화재청이 지난해 3월 문화재매매업자로부터 구매한 '효종실록'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책은 적상산사고본과 봉모당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1책,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3책이 있는 적상산사고본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전부 반출했다고 전해졌으나, 남한에 일부가 남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광해군일기'로, 첫면에 '이왕가도서지장'(李王家圖書之章)과 '무주적산상사고소장 조선총독부기증본'(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라는 인장이 남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있는 봉모당본은 정조가 1776년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 부속 건물로 건립한 봉모당(奉謨堂)에 보관한 실록이다.
푸른색 비단으로 장정하고 첫면에 '봉모당인'(奉謨堂印)이라는 인장이 있는 점이 특징으로, 조선 후기에 왕을 위해 역대 국왕과 왕비의 행적을 기록했다.
문화재청은 실록 96책을 새롭게 지정하는 과정에서 국보 번호를 일부 변경할 방침이다. 제151-1∼3호는 그대로 유지하고 제151-4호는 적상산사고본, 제151-5호는 봉모당본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기존에 제151-4호였던 산엽본은 제151-6호가 된다.
황정연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다"며 "봉모당본은 영조 대에 처음 만든 것으로 전하는데, 조정에서 논의한 국정의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관(史官)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어 "적상산사고본의 소재를 처음 확인하면서 조선 후기 4대 사고 실록이 일부라도 국내에 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적상산사고본 실록 형태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질과 산엽본 중 낙질본은 원래 사고에서 제외된 중간본(重刊本)이 많고, 산엽본은 정족산사고본 실록의 낙장을 엮은 책"이라며 "일부 조각이라도 소중히 보관해야 한다는 사관들의 마음가짐과 편찬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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