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포장한 관찰예능 범람, 정작 현미경 검증은 부재
"모험 꺼리며 폭 좁은 풀 형성…물의 후 복귀 템포도 빨라져"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송은경 기자 = 스타의 일상부터 연애, 가족까지 훔쳐보는 '관찰예능'이 대세라지만 좀처럼 진짜 민낯을 알 수 없다.
가상 연애 리얼리티에서 로맨스 가이로 등극한 스타는 알고 보니 전 연인과 '친자 논쟁' 중이었고, 열정 넘치고 영민한 사업가인 것만 같았던 청년은 사회에 '게이트'급 파문을 불러왔다.
관찰예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도 실제가 아닌 허상만 보고 포장하기 급급한 방송사들의 게으름이 낳은 사태들이다.
◇ '기만형'부터 '뻔뻔형'까지 뒤통수도 각양각색
예능가 블루칩이었던 래퍼 마이크로닷, '엄친아' 이미지를 벗고 연애에 도전한 가수 겸 배우 김정훈은 시청자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채널A '도시어부', tvN '모두의 연애'와 '친절한 기사단' 등에서 활약한 마이크로닷은 인기 절정에서도 부모 사기 혐의 문제가 수면 위로 조금씩 떠 올랐다. 특히 그가 인지도를 쌓기 시작하면서 그의 SNS에는 의혹을 제기하는 댓글도 늘었다.
마이크로닷 부모의 사기 의혹은 충북 제천 지역에서는 지금까지도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피해 규모가 엄청났기 때문에, 마이크로닷의 예능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방송가는 오랜만에 등장한 신선한 예능인을 굳이 검증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겹치기 출연을 시키기에 급급했고, 그 게으름은 나중에 제작진의 '통편집' 수고는 물론 프로그램이 수명 단축 위기에 놓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김정훈의 경우에는 제작진마저 감쪽같이 속았다는 게 방송사 설명이다.
사전 인터뷰에서 "2년째 솔로"라던 그는 전 연인에게 임신 중절을 종용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충격을 안겼다. 함께 출연한 이필모-서수연 커플이 실제로 결혼에까지 골인하면서 시청자의 몰입감이 한창이던 때라 더욱 그랬다.
그는 사건 발생 후에도 한동안 '잠수'를 선택, 마지막까지 책임감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대놓고 뻔뻔한 유형도 있으니 '버닝썬 게이트'를 촉발한 승리와 성관계 영상을 불법 유포한 정준영이다.
승리가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클럽 버닝썬의 존재는 '미운 우리 새끼'와 MBC TV '나 혼자 산다'에서 이미 알려졌다.
방송에서는 청춘의 열정, 사업 수완 좋은 한류스타 등 온갖 좋은 수식어로만 포장됐을 뿐 실제로 어떤 사업이고 그가 사업장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 제대로 된 '관찰'은 없었다.
정준영의 여러 몰카가 담긴 휴대전화 역시 MBC TV '라디오스타'에서 절친했던 가수 지코에 의해 언급됐다.
여자들 연락처만 있는 휴대전화를 정준영 집에 올 때마다 '정독'했다는 지코의 설명은 누가 봐도 의심스러웠지만, 제작진은 그저 '황금폰'이라고 희화화하며 MC와 패널들이 시시덕대는 모습만 여과 없이 실었다. 그리고 그 '황금폰'은 연예계는 물론 수사기관의 신뢰도까지 날려버린 대형 폭탄이 됐다.
◇ "성실한 검증 포기한 방송사와 빨라진 복귀 템포 문제"
일련의 반복된 사태들은 결국 방송사들의 매너리즘이 크게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널을 돌려도 또 그 연예인'이라는 방송환경 역시 그런 게으름에 기인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14일 통화에서 "다채널 환경이 되면서 방송사들로서는 방송에 나올 사람이 아쉬워질 수 있다"라며 "당장 출연할 수 있고, 화제성 있고, 시청률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얼핏 보여도 일단 출연시키고 보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제작진이 믿고 출연시킬 만한 사람은 극소수라고 보는 것 같다"라며 "특히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이 활성화하면서 한 곳에라도 출연하면 서로 '검증했겠거니' 하며 굳이 모험하려 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기존 연예인에 대한 검증도 이토록 부실하니 일반인이 출연하는 예능은 더욱 사각지대이다. 방송사들은 "그렇다고 사전에 사찰을 할 수도 없지 않냐"고 항변하지만, 사건이 벌어진 뒤 하차시키는 방식은 무책임하다. 전파를 한 번 타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큰 영향을 고려하면 좀 더 성실한 검증이 필요하다.
물의를 일으킨 스타들의 일러진 복귀 시점과 일관성 없는 판단도 문제로 꼽힌다.
정준영은 과거 한차례 몰카 논란에 휩싸였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자 기다렸다는 듯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은 그를 냉큼 다시 불러들였다. 가뜩이나 민감한 성 문제였지만 너무 쉽게 재검증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시 연출한 유일용 PD는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이외에도 음주운전, 도박 등 여러 물의를 빚고도 방송에 쉽게 복귀하는 스타는 상당히 많고, 복귀 방식이나 시점에 이성적인 판단도 없다.
과거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배우 조형기는 인터넷 발달 후 점차 방송에서 사라졌지만, 잠재적 살인으로 불리는 음주운전을 한 스타들은 여전히 예능계를 종횡무진 누빈다. 가끔은 자숙 기간이 희화화하기도 해서 시청자들 눈살이 찌푸려진다.
하 평론가는 "사회가 자유분방해지고 연예인에 대한 도덕적 기준도 낮아지면서 옛날보다 잘못을 저질러도 돌아오기도 쉽고, 용서도 쉽게 구하려는 것 같다. 스타뿐만 아니라 방송가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고 말했다.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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