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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은 왜 잘 지워지지 않을까?
미 텍사스대 연구진 "최적의 뇌 활성화 필요"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기억은 뇌가 역동적으로 구축한 결과물이다. 뇌는 경험을 통해 일정한 주기로 기억을 업데이트하고 수정하고 재조직한다.
인간의 뇌는 정보의 기억과 망각을 반복하는데 이런 끊임없는 작업은 대부분 잠자는 동안 자동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과 같은 나쁜 기억은 유난히 잊기가 어려운 걸까?
그 과학적 이유를 미국 텍사스대학 오스틴 캠퍼스(UT Austin)의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뇌가 그런 기억을 지우려면 기억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주의력이 필요하다는 게 요지다.
이 연구를 수행한 재러드 루이스-피콕 심리학 교수팀은 관련 보고서를 '저널 오브 뉴로사이언스(Journal of Neuroscience)'에 발표했다.
11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의도적 망각(intentional forgetting)'에 관한 과거 연구의 연장선에서 시작됐다.
보고서의 수석 저자인 루이스-피콕 교수는 "외상 기억(traumatic memories)과 같이 부적응 반응을 일으키는 기억을 지워야, 더 순응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경험을 기억할 수 있다"면서 "수십 년의 연구를 통해 어떤 일을 스스로 원해서 잊을 수 있다는 건 입증됐지만, 우리 뇌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다"고 말했다.
의도적 망각에 관한 이전의 연구는 뇌의 활성도가 높은 '핫스팟(hotspot)'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면 뇌 전반을 제어하는 대뇌 전전두엽이나 장기 기억에 관여하는 대뇌 측두엽(일명 '해마') 같은 부위다.
이번엔 연구의 초점을 옮겨, 뇌의 복부 측두엽 같은 감각 및 지각 영역에서, 복잡한 시각적 자극의 기억 재현에 반응해 어떤 활성화 패턴이 나타나는지 실험했다.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피험자들에게 자연 풍경과 인물의 얼굴 이미지를 보여준 뒤 교대로 기억하라거나 잊으라고 주문하면서 뇌의 활성화 패턴이 어떻게 변하는지 뇌 신경 영상촬영법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인간은 망각을 제어할 수 있지만, 의도적 망각에 성공하려면 뇌의 감각·지각 영역이 '적당한 수준(moderate levels)'으로 활성화돼야 한다는 걸 발견했다.
이와 같은 뇌의 망각 메커니즘에서 적당한 수준의 활성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이런 영역의 활성도가 너무 높으면 기억을 강화하게 되고, 반대로 너무 낮으면 기억 자체를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제1저자인 트레이시 왕 박사후과정 연구원은 "망각의 의도가 기억의 활성도를 높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면서 "이 활성도가 '적당한 수준'에 정확히 도달할 때가 바로 그 기억이 나중에 잊히게 결정되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실험에 자원한 피험자들은 또한 얼굴보다 풍경 이미지를 더 잘 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얼굴 이미지가 감정적 정보를 더 많이 전달하기 때문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루이스-피콕 교수는 "잘 지워지지 않는 강한 감정적 기억들은 우리의 건강과 웰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이번 연구결과가 그런 나쁜 기억을 처리하고 삭제하는 방법을 찾는 향후 연구에 새 길을 열기 바란다"고 말했다.
che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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