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전쟁 봉합국면…그러나 패권경쟁은 격화한다
트럼프-시진핑, 무역전쟁 휴전연장 후 최종담판 타진
무역불균형·악성관행 일단락돼도 '新냉전 勢대결' 지속 전망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봉합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미중 무역협상에서 실질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봤다며 무역전쟁 휴전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협상에 추가 진전이 있을 것임을 가정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정상회담은 미중 무역전쟁을 종식할 담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종 합의가 이뤄지면 고율 관세를 주고받으며 글로벌 경기에 찬물을 끼얹은 관세전쟁은 일단 봉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가라앉는 게 아닌 만큼 미래의 먹을거리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시장경제 체제, 자유 민주주의 기준의 확산을 추구하는 미국, 권위주의 저개발국들과의 공동전선을 형성해 기반을 다지려는 중국 간 주도권 경쟁은 여러 대륙에 걸쳐 끊임없이 충돌음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 봉합 절차 들어간 미중 고율관세 무역전쟁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의 불공정 통상 관행에 보복할 수 있도록 한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개시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중국의 경제침략을 겨냥한 대통령 각서'를 통해 중국에 대한 고율 관세 준비를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외국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외국기업 인수를 통한 기술 강탈, 해킹을 이용한 영업비밀 절도 등 '기술 도둑질'을 지원한다고 비난했다.
이 명령을 근거로 미국 정부는 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25%, 2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때마다 보복에 나서 총 1천1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수입품에 맞불 관세를 물렸다.
그러나 관세전쟁 때문에 기업과 가계의 경제 심리가 얼어붙고 교역 둔화, 연관산업의 위축도 현실화하면서 미국과 중국은 경각심을 갖게 됐다.
고성장 시대를 떠나 경제성장이 급속히 둔화하던 중국은 무역전쟁으로 추가 타격을 심각하게 우려하게 됐다.
미국도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의 경제성장 둔화의 여파 속에 그간의 호황이 경착륙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 봉착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경제의 성패 지표처럼 여기는 주가가 급락하는 등 미중 무역전쟁 때문에 증시에 불안감이 커지면서 협상을 진행할 유인이 커졌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작년 12월 정상회담에서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하고 90일간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결과로 지금까지 진행된 협상에서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외국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침해 ▲관세 무력화·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한 위안화 가치 조작 ▲국유기업 보조금·외국기업 인허가 차별과 같은 비관세 장벽 ▲사이버 기술 절도 등 불공정 관행에 대한 중국의 통상·산업 정책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두고 합의가 추진되고 있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최종 합의가 도출되면 고율 관세전쟁은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중국이 합의를 어길 경우 즉각 고율 관세를 복원하는 '스냅백'(snapback)과 같은 이행강제 장치를 미국이 추진하는 만큼 전쟁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 기술패권 경쟁은 진행형…오히려 격화할 수도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에서 한 부분을 이루고 있던 기술 패권 경쟁은 합의 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의 무역협상에서 결코 합의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 부분이자 지금도 견해차가 큰 부분은 중국의 첨단기술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이다.
중국은 이 계획을 통해 로봇, 항공우주, 해양공학, 고속철도, 신소재, 바이오, 친환경 전력, 농업기기, 차세대 정보기술, 고효율·신에너지 자동차 등 10개 부문에서 기술 자급자족을 달성해 제조업 초강대국으로 발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은 이를 위한 중국 중앙, 지방정부의 일사불란한 노력을 비관세 장벽으로 보고 무역협상에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시진핑 주석의 국가비전 '중국몽'(中國夢)을 뒷받침하는 기간 산업정책으로서 중국이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기술 도둑질 관행을 근절하려는 고율 관세 압박과는 별도로 중국의 기술발전 속도를 저해할 수 있는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미국 상무부가 수출통제 개정법을 토대로 중국을 표적으로 삼아 추진하는 포괄적 부품공급 제한이다.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차세대 기술 수십 가지에 필요한 부품을 미국 기업이 타국 기업에 공급하지 못하도록 막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미국이 차세대 기술 분야에서 아직 중국에 앞서고 있으나 중국과의 격차가 점점 줄면서 추격을 막을 새 도구들을 투입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차세대 기술의 '감초'인 반도체를 겨냥해 중국의 대표 기업을 타격하는 선별적 제재도 가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자급자족 계획의 핵심이자 '중국제조 2025'의 대들보 가운데 하나인 푸젠진화는 상무부 조치로 미국 부품을 공급받지 못하자 폐업 위기에 몰렸다.
미국 재무부는 북한이나 이란 제재법을 들어 중국 기업들에 별도의 제재를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5G에서 세계를 주도하려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견제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약한 보안, 기술 도둑질, 국가기밀 절취 등의 우려를 들어 중국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동맹국을 비롯한 외국에도 중국 통신장비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사용을 자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술과 장비에 대한 경계심은 미국인들과 민주, 공화당에 널리 공유되는 초당적 인식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떠나더라도 기술 패권 경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아시아·유럽·아프리카로 G2 패권전쟁 확산
미국은 지구촌 전역으로 뻗어가는 중국의 세력에 경계심을 감추지 않고 있어 경쟁의 장은 점점 확대될 전망이다.
패권을 향해 성장하는 중국에 대한 기존 패권국 미국의 외교·안보 우려가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이다.
미국은 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 나아가 미주 대륙으로 교역로를 확장해가려는 이 프로젝트를 저지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미·중 관계의 국가안보 현안을 감시하는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는 최근 일대일로를 자유 민주주의 훼손과 기술 패권 도전 전략으로 규정했다.
UCESRC는 작년 11월 연례 보고서에서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권위주의 통치자들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데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들과 전 세계에 대한 시장 접근권을 위협할 수 있는 응용기술의 기준을 수출하는 데 사용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중국의 부상은 명백히 미국과 동맹국의 국가안보, 경제적 이익에 위험이 되고 있다"며 미국 의회와 행정부에 중국의 글로벌 팽창을 막으라고 주문했다.
이 같은 초당적 기조에 따라 세계 각 지역에서 미중 분쟁은 지속되거나 오히려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영유권 분쟁이 첨예한 남중국해뿐만 아니라 일대일로가 쓸고 지나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이미 패권 경쟁이 목격되고 있다.
중국이 중동, 유럽, 아프리카 개도국에서 교량부터 디지털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기간시설을 확충하고 기술기준을 선점하려고 하는 만큼 이 지역으로도 경쟁이 번질 조짐이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미중 무역전쟁의 연장전이 임박한 곳으로 남미 베네수엘라와 아프리카를 꼽았다.
잡지는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수년간 공을 들인 중국 자본에 대한 퇴출이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포브스는 마두로 정권이 결국 무너지고 중국이 베네수엘라에서 주도권을 상실하면 중국과 권위주의 정권의 유착이 같은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미국이 같은 전략을 펼칠 것으로 내다봤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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