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 감독 "2군갈 때 정근우의 표정을 아직도 못 잊어"
"변화를 시도하고 앞장서는 정근우가 정말 고맙다"
"작년 성적만큼은 아니지만 '가을야구' 충분해"
(오키나와=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한용덕(54) 한화 이글스 감독은 2군행을 통보받았을 때, 정근우(37)의 참담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지난해 5월 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이었다.
2루수로 선발 출전한 정근우는 4회말 평범한 뜬공을 놓친 뒤 5회말 중도 교체됐다.
경기는 한화의 9-6 역전승으로 끝이 났지만, 정근우는 다음 날 2군에 갔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붙박이 주전 2루수로 활약한 정근우가 부상이 아닌 이유로 2군에 내려간 것은 2014년 한화 이적 후 처음이었다.
지난 24일 한화의 스프링캠프지인 일본 오키나와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한 감독은 "정근우에게 2군 가라고 했을 때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이 되는 걸 봤다. 그 표정을 아직도 못 잊는다"고 했다.
걱정과는 달리 정근우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변화의 중심에 섰다.
정근우는 지난해 2루수로 39경기에서 실책을 9개 범하는 등 자랑거리였던 수비에 발목을 잡혔다.
물러날 때를 안 정근우는 더는 2루수로서의 자존심을 고집하지 않았다. 2루수 자리에는 강경학-정은원의 새로운 경쟁 구도가 자리를 잡았다.
정근우는 자신보다 팀을 더 생각하면서 팀에 도움이 될 길을 찾았다. 그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중견수로 시즌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한 감독은 "내가 정근우의 위치였다면 대놓고 불평, 불만을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정근우는 그런 게 없다. 이번 캠프에 외야수 글러브를 먼저 챙겨오더라"고 말했다.
그는 "정근우가 그라운드에서 생존하기 위해 변화를 피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고맙더라"며 "변화를 시도하고 앞장서는 정근우가 정말 고마워서라도 그의 중견수 도전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정근우의 변화는 곧 팀 문화의 변화를 상징한다.
'나도 밀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베테랑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게다가 한화는 이번 캠프에 변우혁, 노시환 등 구단 사상 최다 신인을 데려왔다.
한 감독은 "김태균은 캠프 올 때까지 정말 많은 준비를 한 것 같다. 몸과 마음가짐이 예전과 매우 다르다"며 "송광민은 작년에 저렇게 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FA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한 감독은 "내가 한화 감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의도했던 것만큼 팀의 문화가 바뀐 것 같다"며 "고참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며 신인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선의의 경쟁이 팀을 깨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감독은 성적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한 감독은 "사실 지난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와서 올해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떻게 풀어갈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는데, 선수들이 치열하게 훈련하는 모습과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며 "저 정도면 한번 경쟁력 있게 싸워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한 감독은 "작년보다 좋은 성적은 아닐 수도 있지만, '가을야구' 정도는 충분히 해보지 않을까 싶다"며 "물론 궁극적으로는 지속해서 잘하는 팀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초석이 잘 다져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 감독은 "베테랑들이 역할을 잘해줘야 팀이 바로 설 수 있다. 그런데 베테랑들이 그걸 알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며 "팀 문화가 바뀌는 길을 열어준 정근우가 그래서 고맙다"고 거듭 말했다.
물론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정체된 팀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한 감독이 초지일관 밀어붙인 결과다. 그렇게 내부 경쟁을 통해 팀이 한단계 도약하면서 한화는 지난 시즌 11년 만의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한 감독은 "작년 취임했을 때만 해도 일부 선수들은 초보 감독인 나를 편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태한 측면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묵묵히 가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1년 만에 달라졌다"며 "작년처럼 올해도 변함없이 한 곳을 바라보고 꾸준히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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