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기사·바둑팬들로 북적북적' 농심배 검토실
국적 관계없이 바둑 토론하는 사랑방…라면·과자 '수북'
(상하이=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제2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은 19일 중국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 박정환 9단이 홀로 분전했지만, 중국 당이페이 9단에게 아쉬운 패배를 당하면서 우승 도전을 이어가지 못했다.
박정환이 이 대국에서 이겼더라면 농심배는 최대 22일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이 경우 박정환은 스웨 9단, 구쯔하오 9단, 커제 9단을 연달아 상대했어야 했다.
박정환이 '상하이 대첩'에 성공할지, 중국 기사들이 '철벽 방어막'을 칠지 관심이 쏠린 만큼, 대국장인 중국 상하이 그랜드센트럴호텔은 한국·중국·일본 바둑 인사들과 현지 바둑팬들로 매우 북적였다.
대국은 호텔 4층에 마련된 특별대국실에서 열렸다. 대국실은 대국이 시작하고 수 분 동안만 취재진에 공개한다. 또 대국이 끝난 직후 두 기사가 복기할 때도 취재진에 개방한다.
대국이 한창 진행될 때 대국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대신 대국실 바로 옆방에 마련된 검토실은 장이 열린 듯 활기가 넘친다.
검토실은 일류 프로기사들과 바둑 팬, 기자들이 바둑을 매개로 모이는 사랑방과 같다.
19일 검토실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박정환과 당이페이의 대국 내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한중일 바둑 기사들과 관계자들은 중계를 지켜보고 바둑판에 직접 돌을 놓아보며 전투 상황을 분석하고 토론했다.
'농심배 전설' 이창호 9단과 한국 바둑의 거목 김인 9단, 김영삼 한국기원 사무총장과 목진석 한국바둑대표팀 감독은 모니터 바로 앞자리를 차지, 박정환과 당이페이가 둔 수를 하나하나 분석했다.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은 지난 18일 박정환에게 패했지만, 일본에 돌아가지 않고 현장에 남아 목진석 감독, 이창호 9단 등 한국 바둑인들과 함께 바둑을 연구하는 열의를 보였다.
목진석 감독이 중국어·일본어·영어에 모두 능통하고, 쿵링원 일본 대표팀 단장도 중국·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해 양 팀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대국장 안에서는 '적'이지만, 검토실 안에서는 바둑으로 하나가 되는 '동료'가 된다.
이창호 9단 주변에는 중국 바둑팬들이 부채, 종이 등을 들고 줄을 형성했다. 사인을 받고 기념사진도 찍기 위해서다.
아마추어 기사라는 장이칭 씨는 중국 프로기사들은 물론 이창호 9단, 목진석 감독, 김인 9단의 사인을 수집한 부채를 펼쳐 보이며 자랑했다.
장이칭 씨는 자신이 바둑을 가르치는 꼬마 제자와 함께 농심배 검토실을 찾았다고 소개했다.
검토실 중간 넓은 자리에는 중국 기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위빈 중국대표팀 감독은 '출격 대기' 중인 스웨, 구쯔하오와 하나의 바둑판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창호 9단과 199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 뜨거운 라이벌전을 펼쳤던 중국의 창하오 9단도 중국대표팀 옆에서 훈수를 뒀다.
이창호 9단과 창하오 9단은 검토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회포를 풀기도 했다. 한중 바둑의 전설들이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찍으려는 취재진과 팬들로 검토실에서는 잠시 북새통이 벌어졌다.
이후 검토실은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팬이 찾아오면서 장내가 다시 복잡해졌다. 특히 중국대표팀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
대회 관계자는 "팬들의 검토실 출입을 특별히 막지는 않는다"고 밝혔지만, 검토실이 너무 소란스러워지자 결국에는 출입증을 소지하지 않은 일반 팬들을 검토실 밖으로 안내하는 조치를 했다.
팬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검토실 밖 복도에서 대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들은 복기를 다 하고 대국실에서 나오는 박정환과 당이페이에게 다가가 사인과 사진을 요청했고, 기사들은 대국 결과와 관계없이 팬들의 요구에 응했다.
한편, 농심배는 식품 회사인 농심이 후원하는 만큼 대국실, 검토실은 물론 복도 곳곳에 라면, 과자, 생수가 항상 풍족하게 비치된 것이 특징이다. 검토실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출출할 틈 없이 간식을 즐겼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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