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군기 시장 "'항일투쟁의 성지' 용인시 재조명하겠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용인=연합뉴스) 김인유 기자 = 백군기 경기 용인시장은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는 기념사업과 관련해 "대몽항쟁과 항일투쟁의 성지인 용인시가 역사적으로 재조명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18일 말했다.
백 시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용인시가 베드타운, 난개발 도시라는 오명을 받고 있지만, 국가위기 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라면서 이같이 밝히고 " 애국심과 충정이 남달랐던 용인에 사는 것에 대해 시민들은 자긍심을 가져달라"라고 당부했다.
용인시는 '다시 밝히는 100년의 횃불'을 주제로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 중이다.
다음은 백 시장과의 일문일답.
-- 용인지역 만세운동의 의의는 무엇인가.
▲ 용인은 오래전부터 구국 항쟁의 전통이 이어져 온 고장이다. 1232년 주민들과 함께 몽골의 침략에 맞서 처인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승려 김윤후와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운 이일 장군의 이야기는 지금도 널리 전해진다. 3.1 만세운동을 통해 그 정신이 되살아났다.
용인의 3·1운동은 광범위하고 격렬했다. 용인 전 지역에서 학생, 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시위운동에 나섰는데, 당시 인구의 절반가량인 1만3천200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 용인지역 만세운동은 어떻게 전개됐나.
▲ 1919년 3월 21일 오일장이 열리던 원삼면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원삼면 좌항리에서 황경준·최상근 등의 주도로 200여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 향했고, 3월 24일에는 김량장보통학교 학생들이 졸업식을 마친 후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용인의 3·1운동은 3월 28일과 29일에 절정을 이뤘는데, 수여면 김량장리 용인군청 앞에 1천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수지면 고기리· 동천리·풍덕천리 등으로 이어진 시위에는 2천여명이 가세했다. 용인의 시위운동은 4월 3일까지 이어졌다.
용인에서는 3.1만세운동에 1만3천200여명이 참가해 35명이 순국했고, 140여명이 상처를 입었으며, 500여명 이상이 투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주목할 만한 기념사업은 무엇인가.
▲ 3월 1일 시청광장에서 3·1절 기념식과 함께 만세운동을 재현한다. 100년 전 만세운동에 참여한 1만3천200명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같은 수의 시민 만세운동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당시 용인 인구가 3만2천명이었다고 하니 노인과 어린이를 빼고 거의 모든 시민이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용인주민들은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섰다. 용인주민의 DNA에는 남다른 애국심과 용맹함, 혼이 살아 있다.
그동안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마다 시기와 방법을 달리해서 진행하던 기념사업을 올해는 시가 전체를 통합해 운영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100년 전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시작한 것처럼 100주년 기념사업도 시민들의 참여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유와 독립을 향한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용인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1월 25일 민·관 공동추진단을 발족했다.
--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 올해 용인시는 자발적인 3·1운동으로 나라의 주인임을 증명한 선현들의 자긍심을 잇고자 한다. 자유와 독립을 향한 정신을 계승하고,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데 많은 시민이 참여해 주길 바란다. 100만 시민의 참여로 '다시 밝히는 100년 횃불'은 더욱 밝게 빛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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