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80분 새해 국정연설…국경장벽 압박에 美정치 분열상 노출
공화는 시종 환호 일색… 민주, 사안별로 '박수·냉담' 선별반응
여성의원들 '백의' 복장하며 냉담한 표정…공감하는 사안 나오자 "USA" 외쳐
미 언론 "트럼프, 의회의 증오 분위기와 충돌"…"전투적인 국정연설"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하원 의사당에서 한 상·하원 합동의회 형식의 국정 연설에서 '위대한 어드벤처'(Great American Adventure)의 새로운 장에 대담하고 용감하게 진입해야 한다면서 초당적 화합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연방정부의 셧다운(부분적 업무정지) 사태를 불러왔던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거듭 촉구하며 민주당을 사실상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80분에 걸쳐 진행된 이 날 국정 연설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일자리 창출과 낮은 실업률 등을 거론, "우리의 경제는 전 세계의 부러움이 되고 있다"면서 자신의 치적을 한껏 자랑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밤 내가 제시하는 어젠다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어젠다가 아닌 미국민의 어젠다"라면서 "우리의 공동체를 더 안전하게, 우리의 가족을 더 강하게, 우리의 문화를 더 풍요롭게, 우리 믿음을 더 깊게, 우리의 중산층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번성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복수와 저항과 보복의 정치를 거부해야 하고, 협력과 타협과 공동선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용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함께 수십 년의 정치적 교착을 깨고, 과거의 분열을 극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연합을 결성하고, 새로운 해법을 만들고, 미국의 미래에 대한 특별한 약속의 문을 열 수 있다. 그 결정은 우리의 것"이라며 단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과 민주당은 긴급한 국가적 위기에 맞서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면서 불법 이민 문제를 제기하고 "나는 그것을 건설할 것"이라면서 미-멕시코 간 국경장벽 건설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쪽 국경을 보호할 법안을 통과시킬 시한이 10일 남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오는 15일까지 민주당이 장벽예산을 반영하지 않으면 다시 셧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민주당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제도ㆍACA)와 관련,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에게 부과하는 벌금을 없애 사실상 의무가입 조항을 폐지한 것을 치적으로 거론했다. 이는 민주당이 격렬히 반대했던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모든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후기낙태(late-term abortion)를 금지하는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한다"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낙태 문제를 거론했다.
이날 의원들은 차별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연설 포인트에서 기립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사안별로 대응을 달리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등을 일으켜 세워 치하할 때는 기립박수를 같이 치며 호응했지만, 이민 문제나 미-멕시코 국경장벽 문제, 오바마케어 등 대립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자리에 앉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상당수가 민주당 의원들로 보이는 여성의원들은 흰색 의상을 입고 참석,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주요 대목에서 냉담한 반응을 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연단 뒤 의장석에 앉은 펠로시 하원 의장도 흰색 옷을 입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선별적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화합을 강조했지만 정작 이날 국정 연설은 미 정치의 분열상을 극명히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1세기 전 미 의회가 여성의 참정권을 부여한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킨 것을 거론하면서 의회에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원들이 많이 진출했다고 언급하자 의원들은 '유에스에이'(USA)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이들 '백의' 여성의원들도 동참했다.
흰색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인 '서프러제트'를 상징하는 색이다.
이날 '백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항의' 표시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원들은 2017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의 첫 양원 합동연설 당시에도 여성 차별과 폄하 발언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에 항의하는 의미로 흰옷을 입고 등원한 바 있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지난달 30일 민주당의 여성의원 모임(DWWG) 회장인 로이스 프랭클(플로리다) 하원 의원이 민주당과 공화당 여성의원들에 오는 5일 하원회의장에서 열리는 국정 연설에 흰색 의상을 입고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프랭클 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흰옷을 입는 것은 미 전역에 걸친 여성의 연대를 존중하는 메시지이자 우리가 어렵게 얻은 권리를 잃지 않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연설에서는 많은 여성의원이 검은색 의상을 입고 참여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대해 지지 의사를 나타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국정 연설에서는 북한의 핵 추구에 대해 "최고의 압박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밝히고 북한 인권문제를 강하게 비판했지만 이날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는 좋다"면서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의 북미 제2차 정상회담을 전격 발표해 확연한 대조를 보였다.
미 AP통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초당적 협력 호소는 그 자신이 일조해온 의회에서의 증오 분위기와 충돌했다"면서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백의의 바다'(sea of white)를 이루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가 생생하게 표출됐다"고 평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문제와 낙태 금지 법안 등의 언급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향한 호소였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이 "전투적인 국정연설에서 민주당에 양보하지 않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주장하는 국경장벽 이슈 등과 관련해 민주당에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날 국정연설에는 이색 '게스트'들이 초대돼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성이 같다는 이유로 몇 년간 왕따를 당해온 것으로 알려진 조슈아 트럼프라는 중학생이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의 주변에 앉았다.
또 지난해 뇌종양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그레이스 엘린(10) 양도 초대돼 멜라니아 여사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엘린은 뇌종양 판정 전에 어린이 병원 기부 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마약 밀수로 종신형을 받고 20년 넘게 수감됐다가 지난해 특별 감형으로 석방된 앨리스 마리 존슨(63)도 초청됐다. 그는 마약사범에 대한 판사의 형량 결정 재량을 확대하려는 트럼프 정책의 수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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