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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2년] ③총력전 벌인 검찰…사상초유 사법수장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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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2년] ③총력전 벌인 검찰…사상초유 사법수장 구속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총동원…압수수색 영장 놓고 법원·검찰 신경전
'방탄법원'에 우회 거듭…임종헌 USB·외교부 캐비닛서 물증 대거 확보
'양승태 직접개입' 막판 수사력 집중…"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주도" 해석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법원·검찰 청사가 모여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7개월 넘게 긴장감이 팽팽했다. 판사들이 입버릇처럼 '신성하다'고 말해온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았다는 의혹을 놓고 검찰이 진실규명 작업을 본격화한 지난해 6월부터였다.
법원과 검찰은 내내 신경전을 벌였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공언과 달리 법원은 수사 초반 압수수색 영장을 줄줄이 기각하며 빗장을 걸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인력이 총동원됐지만 수사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검찰은 법원의 방어막에 가로막힐 때마다 우회로를 찾아야 했다. 곡절을 거듭하며 돌아갈수록 역으로 양승태 사법부의 민낯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사는 전직 대법원장 구속이라는 비극적 기록을 역사에 남기고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몇 차례 결정적 전환점에서 성과를 쌓은 결과다.



◇ '키맨' 임종헌의 USB…내부문건 8천건 쏟아져
검찰은 법원이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놓고 세 차례에 걸쳐 벌인 자체 조사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확인하는 단계부터 벽에 부딪혔다. 법원은 각종 의혹 문건을 작성한 법원행정처 심의관들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법관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제출해달라는 검찰의 요청을 거부했다. 법원이 자체 선별한 문건 410건만 받아든 검찰은 결국 강제수사에 나섰다.
법원은 '행동대장' 격인 임 전 차장의 주거지와 사무실 압수수색만 허용하고 '몸통'에 해당하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은 기각했다. 검찰은 수사착수 3개월 만인 작년 9월 말에야 양 전 대법원장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마저도 주거지는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돼 실익이 거의 없었다. 법원의 '꼬리 자르기'는 의심보다 현실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임 전 차장 압수수색으로 수사 기초자료를 대거 확보했다. 사무실 직원의 가방 안에 있던 USB(이동식저장장치)에서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며 작성하고 보고받은 내부문건 8천여 건이 쏟아져 나왔다. 검찰 수사는 이들 가운데 범죄 혐의를 의심할 만한 문건을 추린 다음 전·현직 판사들을 불러 작성 경위를 파악하고 문건 속 구상이 실행에 옮겨졌는지 확인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 외교부 캐비닛엔 '재판거래' 기록 온전히 보존
법원행정처가 2013년 작성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대외비)'라는 문건은 다소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던 재판거래 의혹이 실제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문건에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에 외교부 민원을 반영해 '절차적 만족감'을 주고 판사들의 해외공관 파견에 정부의 협조를 얻는다는 구상이 담겼다.
다만 재판거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됐는지,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거래 과정을 재구성하기 위해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과 소송에 관여한 전·현직 판사들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문건 내용은 부적절하나 대한민국 대법관이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대신 거래 상대방인 외교부 압수수색만 허가했다. 그러나 검찰은 핵심 의혹으로 꼽히는 징용소송 재판거래의 결정적 증거들을 외교부 캐비닛에서 찾아냈다. 2013년 10월 임 전 차장과 주철기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면담 내용을 기록한 문건은 재판거래 구상이 행동으로 옮겨진 첫 단서였다.
징용소송 재판거래의 최종 상대는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였다는 증거도 발견됐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을 차례로 불러 재판을 일단 미루고 전원합의체에 넘겨 결론을 뒤집어달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의 문건이 나왔다. 당시 대법관들이 구체적인 지연 전략을 제시하거나 계류 중인 관련 소송을 취합해 보고하는 등 재판거래에 적극적으로 나선 정황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 "범죄사실 소명"…임종헌 구속으로 수사 활력
임 전 차장은 수사 초반부터 사법농단 의혹의 '키맨'으로 꼽혔다. 재판거래는 물론 법원 자체조사와 검찰 수사로 제기된 모든 의혹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검찰은 의혹의 꼭짓점에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의 법적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따지기 위해 실무 총책임자인 임 전 차장 수사에 공을 들였다.
법원은 지난해 10월27일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양·박·고'로 불리는 수뇌부 세 명이 수십 차례 공범으로 적시돼 있었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연결고리 삼아 양 전 대법원장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을 묻는다는 수사계획의 한 단락이 일단 마무리됐다.
임 전 차장의 구속은 사법행정 지휘라인뿐 아니라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100명 넘는 판사들을 상대로 한 주변부 수사에도 숨통을 틔웠다.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는 "재판개입이 불가능하므로 직권남용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종전의 압수수색 영장 기각사유를 더이상 제시하지 못했다.



◇ '사법농단' 직접 뛴 흔적…양승태 결국 구속
그러나 검찰 수사는 다시 벽에 부딪혔다. 당초 혐의를 적극 부인한 임 전 차장은 구속 직후부터 모든 진술을 거부했다. 임 전 차장에서 박·고 전 대법관을 거쳐 양 전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지시·보고를 토대로 윗선의 혐의를 입증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더구나 법원은 지난해 12월7일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박·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연결고리를 차단당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으로 직행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수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증거를 찾는 데 집중됐다. 임 전 차장과 두 전직 대법관 이외의 실무진에게 보고를 받고 의사결정을 내린 정황도 모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기업을 대리하는 변호사를 만나 징용소송 계획을 알려주고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건에 직접 'V' 표시를 하며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들을 선별한 흔적을 찾아낸 것이 결정타가 됐다. 법원은 지난달 24일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두 전직 대법관과 달리 임 전 차장과 공모관계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동대장'과 '총책임자'로 구속된 임 전 차장과 양 전 대법원장 가운데 누가 주범인지, 어느 쪽의 법적 책임이 더 큰지는 법정에서 가려진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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