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당국 조롱한 트럼프에 역풍…"목숨걸고 뛰는데" "지적 파산"
"학교 돌아가라" 원색적 표현에 美여야 "정보기관 묵살 위험" 일제 비판
오바마 반감 표출 분석도…"대중에 이견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북한과 이란의 대미(對美) 안보 위협을 놓고 자신과 다른 평가를 한 정보당국을 싸잡아 비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고급정보를 수집해 미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수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정보기관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독단적 통치 방식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위 정보수장들은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서 북한 비핵화 등 핵심 외교이슈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노출했다.
이들 정보기관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동안 줄곧 낙관론을 펴온 트럼프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판단을 보였다.
이란 핵 위협에 대해선 미국이 작년 5월 탈퇴한 이란 핵 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가 여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했다. 코츠 국장은 "현재로선 (이란이) 핵심적 핵무기 개발 활동에 착수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군 방침을 밝히면서 완전히 격퇴했다고 선언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해서도 "여전히 테러리스트이자 반란 위협세력으로 남아있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핵심 외교정책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전매특허' 격인 트위터 논평을 통해 시차를 두고 사안별 반격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과 미국이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최상"이라며 "이전 행정부가 끝나갈 무렵 관계는 끔찍했고 매우 나쁜 일이 일어나려고 했다. 지금은 완전히 얘기가 달라졌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나는 곧 김정은을 보게 되길 고대한다.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썼다.
이란에 대해선 "정보기관 사람들은 이란의 위험성에 대해 매우 수동적이고 순진한 것처럼 보인다"며 "그들은 틀렸다!"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트윗에서 "정보기관은 학교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며 원색적인 어조로 조롱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안보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평가받는 정보기관에게 불신을 표하며 등을 돌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에 일제히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민주당 소속 마크 워너 상원 정보위 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깎아내리는 그 정보를 위해 정보기관 사람들은 목숨을 건다"고 일갈했다.
같은 당 아담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도 "대통령이 정보기관의 정보를 묵살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그러한 정보를 무시한다면 나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며 이는 국가안보가 더 악화함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역시 "정보기관 수장들은 당장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정보 평가의 기초가 되는 팩트와 가공되지 않은 첩보들에 대해 대통령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공화당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공화당 마이크 갤러거 하원 의원은 "정보기관들은 매우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진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정보기관을 감쌌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기관과 대척점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에도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정보기관의 의견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을 피력했다. 그는 2003년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에 핵시설이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이라크전을 초래한 정보기관의 전력을 조롱하기도 했다.
작년에도 정보당국의 고위 인사가 러시아가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활동을 지속해서 펼치고 있다고 경고하자 이를 대놓고 반박한 바 있다.
정보기관 출신 고위인사들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존 브레넌 전 CIA 국장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기관들의 일관된 정보 평가를 부인하는 것은 '지적 파산'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마이클 모렐 전 CIA 국장대행도 트위터에 "정보기관 사람들은 매일 명예와 위엄을 갖고 국가에 봉사하는 훈련된 전문가들"이라며 "그들은 절대 국가안보를 놓고 정치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관련 보도에서 "대통령과 정보기관 간 이견은 미국의 외교정책 목표에 대해 대중과 동맹의 신뢰를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국의 한 관료는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성사된 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은 정보기관이 내놓은 의견을 겨냥하기 보다는 정보기관 그 자체의 신뢰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짚었다.
보수성향 미 헤리티지재단 소속 안보 전문가인 제임스 제이 카라파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정보기관 사람들은 그들이 수집하고 평가한 정보만 갖고 판단할 수 있다"며 "수뇌부는 (그 정보가 주는) 함의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통의 정상적인 행정부라면 이러한 이견이 대중에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독특한 지도자여서 이러한 관례를 무시할 수는 있지만 미국의 정책 방향은 우방에게나 적에게나 똑같이 분명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WP는 이날 정보기관과 각을 세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기관 등의 회의적 시각을 배제하고 북한 비핵화에 낙관론을 펴게 된 배경에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전 세계 지도자 가운데 그 누구보다 자주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으로부터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시각과 의심이 담긴 의견을 들었겠지만, 그 와중에 문 대통령은 평화적 협상 추진이 가치가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신문은 문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를 외교로 풀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고를 칭찬하면서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한다고 말한 사실을 소개하기도 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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