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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앞 기자회견·36시간 조서열람…양승태, 구속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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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앞 기자회견·36시간 조서열람…양승태, 구속 '자충수'
영장심사때 "증거 조작·왜곡됐다" 혐의 전면부인도 '패착'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검찰 수사가 6개월 넘게 이어진 상황에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조계 안팎에선 '발부'보다는 '기각'을 점치는 견해가 많았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상고법원 도입 등 개인의 역점사업을 위해 재판을 거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을 법원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면, 자칫 사법 불신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예상을 뒤엎고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검찰 조사 전 대법원 앞 기자회견과 검찰 포토라인 패싱, '마라톤 조서 열람' 등 계속해서 '특권'을 요구한 양 전 대법원장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전직 대통령들도 섰던 포토라인 '패싱'…조사시간보다 긴 조서열람시간
양 전 대법원장의 이례적 행보는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첫날부터 시작됐다.
그는 검찰에 출석하기 전 '친정'인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 측이 난색을 보이며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불허하자 정문 바깥에서 회견을 강행했다.
사법부의 상징인 대법원 건물을 배경으로 두고 양 전 대법원장은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랄 뿐"이라며 검찰 수사가 왜곡됐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나중에라도 만일 그 사람들(후배 법관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라며 후배 법관들이 자신 몰래 한 일이라는 듯한 발언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섰던 검찰 포토라인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패싱'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이 전직 사법부 수장이라는 '권위'를 보여주는 동시에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법원조직의 단결을 요구하기 위해 대법원 기자회견이라는 수를 뒀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회견 과정에서 외려 '전직 대법원장이라는 지위가 현직 판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에 대한 비판여론이 더욱 커졌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법원에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사법부 재판개입의 피해자이기도 한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은 "대법원 앞 기자회견이 분명한 역효과를 불러왔다고 본다"며 "양 전 대법원장은 피의자로 조사받고 있는데도 아직 대법원장인 것처럼 행동해 법관들에게 '저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마저 들도록 했다"고 말했다.
서 전 의원은 "후배 판사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심문조서열람을 30시간 넘게 한 것 역시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었다"며 "설령 본인이 죄가 없거나 혐의가 옅더라고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보였어야 할 태도는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다섯 차례 검찰에 출두해 27시간(식사·휴식시간 포함) 조사받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36시간 이상을 심문 조서를 검토하는 데 할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7시간 30분), 이명박 전 대통령(6시간) 등 주요 인사와 비교해도 조서 검토 시간이 월등히 길었다.
법조계 일각에선 일반인들도 검찰 조사 때 이렇게 오랜 기간 조서를 열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특혜' 비판이 일었다.



◇ 증거 왜곡·조작 주장 결정적 패착됐나
구속 여부를 가르는 자리인 영장실질심사에선 후배 판사들의 진술과 검찰이 내세운 증거가 조작·왜곡됐다고 주장한 게 결정적 패착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를 직접 만나 징용소송 재판 계획을 논의한 점,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 명단을 적은 문건에 'V' 표시를 한 점 등 양 전 대법원장이 단순히 하급자에게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와 진술을 다수 제시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이런 증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해 역으로 '증거인멸 가능성이 크기에 구속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불렀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후배 법관들의 진술이 제시되자 거짓 진술이라는 취지로 반박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 여부를 심사한 명재권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증거인멸 우려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영장을 발부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출신인 노영희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차라리 부적절한 행동을 인정하고,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는 있다는 식의 전략을 폈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며 "사법부 수장이었던 인물이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증거를 보고도 모른 척한 것은 오만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명재권 부장판사는 검사 출신이기에 검찰이 내놓은 증거가 어떤 의미인지 명확히 알았을 것"이라며 "분명한 증거 앞에서 모른다며 잡아떼는 것을 보면서 영장 발부를 결심한 게 아닐까 한다"고 분석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함으로써 더 이상의 '책임 미루기'가 없도록 하고, 사법부의 자정 능력을 알려 신뢰를 되찾고자 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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