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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2회 수상 NYT 유명 칼럼니스트 러셀 베이커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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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2회 수상 NYT 유명 칼럼니스트 러셀 베이커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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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상 2회 수상 NYT 유명 칼럼니스트 러셀 베이커 별세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퓰리처상 2회 수상으로 빛나는 뉴욕 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 러셀 베이커가 별세했다. 향년 93세.
    베이커의 아들 앨런은 뉴욕 타임스에 그가 고향인 버지니아주 리스버그의 자택에서 낙상의 후유증으로 21일(현지시간)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베이커는 뉴욕 타임스의 인기 칼럼인 '옵서버'를 집필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9년 첫 퓰리처상을 받았고 1983년에는 대공황 시절을 무대로 한 자서전 '성장'으로 거듭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그는 기자롤 출발해 칼럼니스트, 출판 평론가, 방송 진행자로 활동하는 동안 다정하고 친절하면서도 명민하고 세상 물정에 밝은 면모를 각인시켰다.
    특히 그가 1962년부터 36년간 연재한 '옵서버'는 평이하면서도 재치가 번득이는 필력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로부터 유쾌한 일깨움을 얻도록 함으로써 열렬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가 1998년 마지막 칼럼을 집필하고 뉴욕 타임스를 떠나자 많은 독자들은 재치가 넘치는 그의 통찰을 더는 볼 수 없게 된 것을 자못 아쉬워했었다.



    생전에 그를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고 있었던 많은 원로 언론인들로부터 찬사가 쏟아질 정도였다.
    워싱턴 포스트의 서평가 조너선 야들리는 "다른 언론인들은 그의 업적을 부러워할지 모르지만 모방이 가장 성실한 형태의 자기 홍보가 되는 업계에서 베이커는 스스로의 틀을 부쉈다"고 평한 바 있다.
    편모 슬하에서 궁핍하게 대공황 시기를 보낸 베이커는 1947년 볼티모어 선의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1954년 뉴욕 타임스로 옮겼다.
    아이젠하워와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의회와 국방부, 국무부를 취재했던 그는 회의실 밖에서 정치인들을 마냥 기다리고 이들로부터 거짓말을 듣는 것이 지겨웠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는 정치부 기자 시절에 얻은 경험을 칼럼의 소재로 삼았고 상대편을 상식의 무게로 눌러 매장할 수 있는, 호기심과 해박함을 갖춘 관찰자로서 집필에 임했다.
    옵서버를 연재하면서 그가 세운 목표는 평이한 말로 독자들이 정부와 정치, 외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글쓰기는 독자들로부터 뉴욕 타임스에 만연한 고답적이고 현학적인 글쓰기보다 더 폭넓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1994년에 행한 연설에서 "내게 무언가 중요한 할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신문기자의 고전적 정의, 즉 아무것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되, 이를 표현할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 틀림없다"고 꼬집었다.
    언론계에 보내는 베이커의 쓴소리였다.

    jsmo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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