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 체육계 인권침해 구습…최대규모 조사에 개선될까
인권위, 2006∼2010년 초등부터 대학까지 학생선수 인권 조사
오래전 문제 드러났는데도 '제자리'…인권위, 특별조사단 신설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가 체육계를 대상으로 한 역대 최대규모의 조사단을 꾸려 스포츠 인권 실태를 다시 들여다본다.
학생 선수들을 포함해 수차례 체육계 인권 조사를 했는데도 '고인 물'처럼 나아지지 않던 체육계에서 이번 조사 결과 어떤 사례가 밝혀질지, 또 향후 나아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2일 인권위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인권위는 외부 연구 용역을 통해 초등학생, 중·고교생, 대학생으로 나눠 총 3차례 학생 운동선수의 인권 실태를 파악했다.
연세대 산학협력단에 연구 용역을 줘 2006년 7∼9월 전국 15개 시·도 초등학생 운동선수 7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는 554명(74.3%)이 언어적 폭력을, 559명(74.9%)이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사에서 성적 폭력 피해를 경험한 응답자도 111명(14.9%)으로 나타나 어린 학생들까지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5∼10월 전국 중·고등학교 선수 1천139명을 대상으로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898명(78.8%)이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고교 선수 대상 조사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쉴 때 노크 없이 불쑥 들어온 적이 있다', '몸을 훑어보거나 계속 쳐다본 적이 있다', '무릎 위에 앉히거나 내 허락 없이 내 몸에 기댄 적이 있다' 같은 간접 피해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성폭력 피해 경험을 했다는 응답률은 63.7%(725명)로 높게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는 성인으로 접어든 대학생 선수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이 2010년 5∼11월 대학생 선수 64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77명(89.7%)이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한, 전체 응답자 중 104명(16.2%)이 1가지 유형 이상의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인권위 "체육계 폭력·성폭력 더 이상 간과 못해"…'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신설 / 연합뉴스 (Yonhapnews)
인권위는 또한, 2007년 12월 '학생선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한 정책권고'를 하고, 2008년 실태 조사와 함께 학생선수 인권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이런 모든 활동을 종합한 '스포츠인권 가이드라인'을 2010년 제정해 권고한 바 있다.
이렇듯 이미 체육계 약자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오래전부터 공론화했는데도 쇼트트랙 심석희, 유도 신유용 등 최근의 '미투'(me too) 고발이 이어지자 인권위는 역대 최대규모의 조사를 벌여 체육계 인권 침해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인권위는 산하에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을 신설해 향후 1년간 기획조사와 진정사건 조사, 제도개선 업무를 독립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인권위는 특히 빙상과 유도 등 최근 문제가 된 종목의 전수조사를 포함해 역대 최대규모의 실태조사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스포츠 폭력·성폭력 사건은 전담 조사기구와 연계하는 등 새로운 신고 접수 시스템을 마련하고, 피해자 구제 조치와 법률 지원, 독립적이고 상시적인 국가 감시 체계 수립을 추진한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스포츠 분야의 폭력·성폭력은 한 선수의 일상을 전인격적으로 지배함으로써 피해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평생 지속하는 특수한 구조"라며 "이미 10여 년 전 인권위 실태조사에서 밝혀졌는데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권위가 제정·권고한 '스포츠인권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지 못한 인권위의 책임도 있다"며 "국가는 폭력과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훈련 환경을 만들 책임을 지니고 있는데 그동안 많이 미흡했다. 이제 제대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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