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친필 글씨 미국서 환수(종합)
덕온공주 '자경전기'·신정왕후 편지 등 한글자료 68점 돌아와
"조선왕실 한글문화 보여주는 자료"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조선 22대 왕 정조는 1777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 양화당 옆 작은 언덕에 전각을 지었다. 전각에는 자전(慈殿·임금의 어머니)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자경전(慈慶殿)으로 이름 붙였다.
정조 아들 순조는 1808년 효의왕후(정조 비) 명을 받들어 자경전 유래를 설명하는 '자경전기'(慈慶殿記)를 지었다. 이후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 덕온공주 또한 어머니 명에 따라 한문으로 된 '자경전기'를 한글로 옮겨 썼다. 원문에 토를 달아 한글로 쓰고, 이어서 우리말 번역문을 적었다.
조선 마지막 공주(정실 왕비가 낳은 딸) 덕온공주(1822∼1844)가 남긴 '자경전기'가 국내에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자경전기'를 비롯해 덕온공주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한글자료 68점을 지난해 11월 미국에 사는 후손으로부터 매입해 16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공개했다.
덕온공주는 인기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분했던 주인공 효명세자의 막냇동생이다. 그는 열다섯되던 해 양반가 자제 윤의선과 혼례를 올렸지만, 결혼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었으며 대신 윤용구(1853∼1939)를 양자로 들였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국립한글박물관이 협력해 환수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는 덕온공주와 양자 윤용구, 손녀 윤백영(1888∼1986) 등 왕실 부마 집안에서 3대에 걸쳐 전해진 책, 편지, 서예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가장 돋보이는 유물은 단아한 궁서체로 쓰인 '자경전기'다.
덕온공주 어머니 순원왕후 글씨와 대조시 결구, 획 흐름 등이 흡사한 점과 윤백영이 서책 마지막에 '덕온공주가 어머니 명을 받들어 직접 쓴 글'이라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것은 공주 친필이라는 점에 설득력을 더한다. 글씨는 빼어나지만, 같은 글자를 반복해 쓰는 등 잘못 쓴 흔적도 보인다.
국어학자 이종덕 박사는 "정말 공주가 쓴 것일까 싶을 정도로 글씨가 뛰어난데, 어머니 글씨를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뒤 쓴 친필로 보인다"라면서 "옮겨쓴 시기를 특정할 수 없으나 10년 이상 글씨를 단련한 상태로 생각된다"라고 설명했다.
'자경전기'는 혜경궁 홍씨부터 정조, 효의왕후, 순조, 순원왕후를 거쳐 덕온 공주까지 대를 이어 효로써 봉양하고자 했던 왕실의 효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높다.
덕온공주가 규훈(閨訓·여성이 지켜야 할 덕목과 예절을 소개한 수신서)을 한글로 번역한 서책 일부도 이번 자료에 포함됐다.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와 신정왕후(추존왕 익종 비), 명헌왕후(헌종 계비), 철인왕후(철종 비), 명성황후(고종 비) 등이 직접 쓰거나 상궁이 대필해 덕온공주 집안에 보낸 한글편지도 함께 돌아왔다.
박준호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 왕실 한글문화를 살필 수 있는 유물들"이라면서 "여성들의 의사소통과 생활에서 한글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이 중 신정왕후가 1874년 윤용구의 첫 부인 광산김씨에게 보낸 편지는 조선 최고 한글명필로 꼽히는 궁중 여성 서기 이씨가 대필한 것으로 사료적 중요성이 크다. 내용은 그해 2월 8일 명성왕후가 원자(훗날 순종)를 출산한 기쁨을 전한 것이다.
윤용구가 1909년 고종 명으로 왕실 여성들을 위해 쓴 역사책 '정사기람'(正史紀覽)과 윤영구가 1899년 12살 딸 윤백영을 위해 여성과 관련된 역사를 발췌해 정리한 '여사초략'(女史抄略) 등 한글 역사서 2권도 환수됐다.
윤백영이 1934년 환소군 전기를 한글 궁체로 쓴 '환소군전'(桓少君傳)을 비롯한 서예 작품들도 '한글자료'에 포함됐다. 윤백영은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한글 궁체로는 처음 입선했다.
문화재청은 덕온공주 인장 등 관련 유물을 다수 소장한 국립한글박물관에 이들 자료를 이관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덕온공주 집안의 유물을 소개하는 기획전 개최와 소장자료 총서 발간 등을 계획 중이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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