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해부]②논제도 논거도 똑같고 비문까지 '재탕'
'글 재사용'하며 어색한 표현까지 고스란히
해외저널 논문 전무…미국 명문대 박사로는 이례적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임화섭 오예진 김예나 기자 = 연구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된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전(前) 교수의 저작 중에는 단행본뿐만 아니라 논문도 포함되어 있다.
13일 서울대 인문대 홈페이지의 배 전 교수 소개(아직도 현직으로 표시되어 있음)에는 학술지 논문 27편의 목록이 실려 있다.
이 중 상당수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신학서적 표절반대'의 운영자인 이성하 원주 가현침례교회 목사와 저작권 에이전시 '알맹2'의 맹호성 이사 등에 의해 '표절' 및 '재탕'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의혹에 대해 공식적 결론이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서울대가 조사를 하지 않은 채 배 전 교수의 사표를 수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면죄부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사표 수리나 징계 여부와 무관하게, 연구윤리 확립 차원에서 서울대가 진상조사를 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배 전 교수의 학술지 논문 목록에는 미국 등 해외에서 발행되는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단 하나도 없다.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학자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배 교수의 학술지 게재 논문 중 4편은 영문으로 작성됐으나, 『언어학』(사단법인 한국언어학회), 『Journal of Universal Language』(세종대학교 언어연구소), 『The Mediterranean Review』(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SCRIPTA』(사단법인 훈민정음학회) 등 국내 학술지에만 실렸다.
◇ 논제·인용·분석까지 겹치는 논문
배 전 교수는 2006년에 「죽는 것도 이득이다 -- 바울의 죽음관」이라는 논문을 철학연구회가 발행하는 『철학연구』에 실었다.
이 논문에는 신약성경 빌립보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죽음에 관한 견해를 그리스와 로마 문헌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견해와 비교해 조명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배 전 교수는 22쪽 분량의 논문 중 4쪽에 걸쳐 그리스 고대 극작가 아이스퀼로스(논문의 표기는 '아에쉴루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에우리피데스(논문의 표기는 '유리피데스')의 『메데아』와 『헤라클레스』, 바퀼리데스의 『승리 찬양시』,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등을 인용했다.
그런데 인용 구절들과 설명이 1975년 『Novum Testamentum』에 발표된 D. W. 팔머(Palmer)의 영문 논문 「"To Die Is Gain" (Philippians I 21)」에 나오는 것과 똑같다. 순서까지 대부분 일치한다.
팔머의 논문에 있던 그리스어 원어가 배 전 교수의 논문에서는 생략됐고, 영어 번역 대신 한국어 번역이 들어갔으며, 팔머 논문에 인용된 구절이나 설명 중 일부가 배 전 교수 논문에서 빠진 점이 다를 뿐이다.
배 전 교수는 팔머의 영문 논문을 빌립보서 1:21-24에 나타난 바울의 견해에 관한 각주에서 거론했으나, 정작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 인용 부분에서는 논문 내용을 4쪽이나 연속해서 가져 오고도 거론을 하지 않았다.
팔머의 1975년 논문 역시 빌립보서에 나오는 바울의 죽음관을 다룬 것일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헌에 나타난 죽음관과 이를 비교하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즉 배 전 교수의 2006년 논문과 팔머의 1975년 논문은 주요 논제뿐만 아니라 주요 논거로 쓰인 인용이나 분석 부분까지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일치한다는 것이다.
◇ 똑같은 내용 '재사용 의혹'도
이미 발표한 논문 중 상당 부분을 나중 논문에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혹도 있다. 꽤 많은 분량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과연 새로운 연구로 봐야 하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배철현 전 교수가 2002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간하는 『기독교 사상』에 게재한 「이마고 데이?」라는 글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이 서울대학교 종교학연구회가 2003년 발간한 『종교학연구』 22집에 게재된 「인간은 하나님이다 - 창세기 1.26절의 Imago Dei에 대한 재해석」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후자는 서울대 인문대 홈페이지의 논문 목록에는 빠져 있다.
다만 학술 연구논문의 내용을 에세이로, 또는 거꾸로 개작하는 것은 독자층이 다르므로, 연구 실적으로 중복 제출하지 않고 논문 또는 글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밝힌다면 문제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배 전 교수의 논문이나 기고문 중 내용이 겹치는 사례는 꽤 많았으며, 옛 글에 포함된 어색한 표현이나 비문이 새 글에 그대로 실린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베꼈음을 시사하는 정황이다.
solatido@yna.co.kr
ohyes@yna.co.kr
ye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